[백가쟁명:하병준] 손자병법으로 살펴보는 미국과 중국의 파워대결②

중앙일보

입력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지역 헤게모니를 넘겨받을 수 있는 그 기저(基底)에는 문화 종주국(?)이라는 프리미엄이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동아시아에서 지난 2000년 동안 중국이 가졌던 문화 컨텐츠 태풍에서 안전했던 지역은 태풍의 눈인 중국과 또다른 동급 태풍을 보유한 싸이클론 인도 정도이고 아시아 전체를 보더라도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일부국가의 모래폭풍과 툰드라를 바탕으로 차이나발 태풍을 얼려버린 러시아의 강추위 정도일뿐 그 엄청난 저력이 현재 중국의 급부상에 분명한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이런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20세기 문화·하이테크 산업에서의 엄청난 전파력은 과거 중국의 문화전파력에 버금, 아니 능가하는 수준이다.

이미 말했듯이 미국이 그동안 가졌던 막강한 소비파워, 엄청난 제조업 파워, 2차대전 이후 금본위제가 무너지며 움켜지게 된 달러를 중심으로 한 경제 파워는 이미 중국이 상당부분 보유하게 되어 더 이상 절대 우위 요인(물론 기축통화 파워는 아직 대체되지 않았지만 그 신뢰도는 이미 상당부분 퇴색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 남은게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헐리웃과 기업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 및 기업문화 등 문화산업에서의 우위와 항공우주 및 군사기술, 의료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 의료·IT 기술 부문에서의 우위인데 형태가 없지만 그 파워는 엄청난 무형의 소프트파워를 중국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정치·경제에서는 조만간 미국에 버금가던지 싸워볼 만한(倍則分之,敵則能戰之) 수준에 이를 것이지만 소프트파워 분야에서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0여 년간 중국이 가졌던 문화 컨텐츠를 능가하는 양을 단시간에 보유하게 된 미국을 전면 포위하거나 일방적 공격을 위한(十則圍之,五則攻之) 할 수 있을까?

더구나 중국은 통신·교통이 원할하지 않던 봉건시대의 패권국인 반면 미국은 통신·교통이 원할한 현대시대의 절대 패권국이기 때문에 양국간 승패를 좌우할 정보전 등에 대한 노하우는 미국이 더 많이 축적되어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특히 웹 정보의 90% 이상이 영어인 것은 엄청난 프리미엄이 될 것이다. 웹상에서 만큼은 중국이 포위된 것은 분명하다(十則圍之)는 것이다.

비록 손자가 자신의 병서에서 "상대가 충분한 실력이 있으면 그에 걸맞는 준비를 해라. 그래도 강하다 생각되면 무조건 피해라(實而備之,強而避之)"라며 준비 또 준비해서 상대할 것을 강조했지만 모공편에 "兵貴勝,不貴久。故兵聞拙速,未睹巧之久也。夫兵久而國利者,未之有也。(전쟁에서 승리의 요체는 지구전에 있지 않다. 전쟁에서 속전속결이 중요하지 아직 지구전으로 승리한 경우는 없다. 지구전이 좋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라며 결국은 속전속결을 당부하고 있는데 이는 일부 핵심 사건들에 대해 "이제 참을 만큼 참았으니 우리 실력을 보여야 한다(今日把示君)"는 중국 국민들의 자신감과 조급함에서 속전속결의 욕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든 중국이든 속전속결을 하기에는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쌍둥이 적자 및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 하락, 중산층 붕괴가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중국은 정부 주도의 고속성장 이면의 폐해 적체, 최소 6억 이상의 저소득층의 불만, 미국의 인종문제보다 심각한 민족융합문제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전을 통해 자체 모순 조정을 통한 파워게임을 진행해야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조정해 나갈지 전세계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가지 주목되는 점은 미국이 어느새 중국에 卑而驕之(자신을 낮춰 상대를 교만하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얼마전 힐러리 국무장관이 중국에 방문에서 보인 저자세,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중국 정부 요구안 일방적 수용, 오바마 대통령의 중국 위협론 비판 등등에서 그런 모습을 조금씩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쉽지 않았던 모습이다. 물론 매파 정권이던 부시정부가 아닌 온건파의 민주당 대통령 오바마 정부에서 보여주는 순수한 평화협력의 메세지로만 볼 수도 있겠지만 과연 1인 천하에 익숙한 우리가 한 하늘에 두 태양을 둘 수 있을까? 중국인들도 자주 말하지 않던가? 산중의 왕인 호랑이는 한마리만 있을 뿐(一山不容二虎)이라고.
미국 역시 오랜 기간 패권을 유지하면 이미 단맛을 충분히 봤기에 그 유혹을 이기기 쉽지 않고 정상에서 내려오면 영국처럼 뒷방살이를 해야한다는 것도 이미 두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평화적인 협력을 위해 중국에 무조건으로 몸을 낮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미국이 후진타오 주석이 선물해준 손자병법을 연구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자신을 낮춰 상대를 교만하게 하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홍루몽을 보면 왕희봉(王熙鳳)을 가리키는 말 중에 "機關算盡太聰明,凡算了卿卿性命"이라는 표현이 있다. "너무 술수를 부리다 결국 자신이 당한다"는 말인데 중국이 그동안 미국을 상대로 너무 술수를 부리다 자신들이 당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점도 현재 두 고수 간의 싸움의 중요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미국도 여태껏 알게모르게 당하기만 하다가 김용의 천룡팔부(天龍八部) 속 모용(慕容) 일가가 구사하는 "상대의 술수로 상대를 공격한다(以彼之道,還施彼身)" 무술로 중국에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넘겨 짚어볼 수 있는 상황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다. 중국 성어 중의 면리장침(綿里藏針, 부드러움 솜 속에 바늘이 숨어있다)의 상황을 미국이 만들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온갖 전략이 난무하는 G2 시대에 미·중 사이에 끼인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긴말을 하기보다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북제(北齊) 두필(杜弼)이 쓴 격양문(檄梁文) 속의 한 구절로 대신하며 두서 없는 본 글을 마무리 할까 한다.

城門失火,殃及池魚。(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라)

하병준 중국어 통번역, 강의 프리랜서 bjha76@gmail.com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