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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거꾸로 가는 우리 논쟁문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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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현대 지성사의 한 아름다운 광경 하나를 환기(喚起)해볼까 합니다. 지성의 높이로 치자면 인문학 최고의 것이고, 관용의 정신이 살아있던 논쟁의 앞뒤 사정을 염두에 두자면 과연 아름다운 얘기입니다.

얘기의 시작은 지난 66년부터 연세대 민영규(사학과)교수가 ‘연세춘추’에 장장 2년간 연재를 하면서 부터입니다. 연재물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있을 수 있는 가장 사려깊은 성찰이 종교학 내지 신학과 만나면 과연 어떤 모습인가를 보여주는 지적 작업이었습니다. 그 만남을 국학(國學)의 대가가 보여준 점도 희한했습니다.

민교수는 2차대전 직후 중동의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양피지 문서를 토대로,기독교인들이 뒤로 넘어질만한 가설을 거푸 토해냅니다. 이를테면 예수가 대중 앞에 서는 공적 활동을 개시하기 전의 성장배경과 관련해 그가 에센 수도승 출신이었다는 설정을 합니다. 에센 승단은 쿰란문서에 나오는 금욕주의적 은둔 종파입니다.

예수가 당시 국제도시 알렉산드리아 같은데서 성장한 지식인이라는 증거가 없고,무엇보다 원시 기독교와 에센승단이 너무도 닮은꼴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거가 없는 사나이’예수의 공적 활동 개시란 에센승단과 결별을 결심한 뒤 민중 구원의 대원력(大願力)으로 ‘세상 밖으로’나온 행위라고 민교수는 봅니다.

물론 이런 가설은 예수 삶에 대한 유기적인 성찰의 방식으로서 유효한 것이죠. 민교수는 심지어 예수의 광야에서의 시련이란 ‘세상 밖으로’의 신념을 굳히는 결정적 계기였고, 따라서 세례 요한을 만난 것은 그 직후 두 사나이의 의기투합으로 봐야 한다면서 복음서에 나타난 기록의 앞뒤를 과감하게 재구성해보이기도 합니다.

문학작품 저리가라할 정도의 정교한 문장도 일품인 민교수의 이 글이 연재될 당시 학교 당국은 이런 파천황(破天慌)의 가설을 지켜만 보았고,대신 신과대 소속의 김찬국·지동식 교수 두분의 12차례 반론과 민교수의 재반론이 거듭되면서 대논쟁은 멋진 열매를 맺습니다.

76년 연세대 출판부에서 나온 단행본 ‘예루살렘 입성기’가 그것 입니다. 논쟁의 지적 수준과 매너의 측면에서 해방후 빈약한 우리 논쟁사의 백미로 꼽힐 이런 전례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는 듯 보입니다.

도올 김용옥씨가 KBS ‘논어 이야기’에서 예수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기독교가 발끈했습니다.도올도 지난주 강의에서 서둘러 해명,진화를 했지만 뒷맛을 찜찜합니다.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는 것도 설화적 허구이고,그가 사생아였다는 언급이 문제가 된 모양이나,중요한 것은 강의의 전체 맥락에 대한 고려 아닐까요? 또 그것은 단행본 ‘도올 논어1’에 노출됐던 설명이기도 합니다.“그래도 공중파 강의 아니냐”고 힐난을 한다 해도 결론은 마찬가지 입니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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