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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가루 짓이겨 쓴 저릿한 시 … 그의 그림 보자면 눈물이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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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텁수룩한 수염에 기골이 단단해 뵈는 화가 황재형(58·사진)씨는 엄마라고 하지 않고 ‘엄니’라 불렀다.

“우리 엄니 눈빛을 되살리려 했는데 그게 영 어렵네요.” ‘선탄부 권씨’ 앞에서 그는 오래 서있었다. 정(情)과 눈물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그림 속 여인의 눈망울은 우중충한 배경을 압도하며 빛을 발했다.

강원도 태백에 사는 작가는 10년 넘게 끼고 살던 그림을 서울에 남겨 두고 갈 생각에 옆구리가 아린 듯 했다. 옆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정겨움이 있는 한 삶은 꺾일 수 없다”고 혼잣말처럼 읊었다. 덧니가 앙증맞은 ‘소롯골 소녀’를 보면서는 소설가 황순원이 남긴 말을 상기시켰다. “우리가 진정 보고 싶은 것은 나를 업고 키웠던 누님의 누런 이다.”

지금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에 들어선 사람은 잠시 탄광촌으로 공간 이동한다. 탄광촌이라기보다 우리가 잊고 살던 ‘어떤 시절’로 돌아감이다. 5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황재형-쥘 흙과 뉠 땅’전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30년에 걸친 태백의 흔적을 그림으로 압축해 펼쳐놓는다.

황재형 작, 선탄부 권씨, 72.6X60.7㎝, 캔버스에 유채, 1996. 황씨는 광부로 일할 때 부옇게 탄진이 날리는 갱도에서 탄 알갱이를 도시락에서 집어내며 달게 나눠먹던 밥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점심은삶의 연민이었고 진실”이었다고 돌아보는 작가는 “권씨의 얼굴은 그 연민과 진실을 담은 우리 모든 엄니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가나아트센터 제공]

잊혀지지 말아야 할 땅과 사람의 기억과 자취를 황씨는 무던히 좇아왔다. 빈 들판에서 쓸쓸히 바람 맞는 옥수수 그루터기에 그는 ‘맨발’이란 제목을 붙였다. 삐죽 내민 밑동 하나하나는 광부의 얼굴 같기도 하다. 탄가루가 화면 구석구석에 짓이겨진 ‘검은 고드름’은 주름 가득한 늙은 탄부다. 누런 흙을 두텁게 처 올린 ‘두문동 고갯길’은 우리 인생사처럼 구불텅구불텅 요동친다. 번들번들 기름기가 많은 유화 물감이 느끼할 때 그는 흙과 탄가루로 범벅 된 거칠한 화면을 만든다. 그것이 더 우리를 닮았다고 믿는다.

“살고 있는 광부의 집이 바로 광부의 모습이고 표정이듯, 무심한 사물 하나하나의 존재감이 때론 상충하고 때론 흡수되면서 내게 다가오죠. 색채도 터치도 반발시켜 끝내는 그것들이 부스러지고 깨지면서 생성된 내재된 힘으로 생명력을 발산시킵니다.”

화가는 골목길에 내다버린 연탄재를 꽃처럼 그렸다. 말라비틀어진 들국화 그림에 대고 “이쁘죠, 잉” 했다. 텃밭에 야생화처럼 핀 고추, ‘졸음’처럼 내걸린 빨래들, 동그마니 외로운 화덕 등 그에겐 사람 만큼 귀한 것이 사물이다.

“이 산 저 산 나무를 많이 그리게 되네요. 아무 불평 없이 나무처럼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다 캔버스 밀어놓고 소주만 마시는 날도 꽤 되지요. 82년 처음 태백에 내려왔을 땐 어두침침한 선술집 분위기가 좀 거시기 했는데 요즘은 그 시절이 그립네요.”

똥을 내다버려 ‘똥골’이라 불렸던 탄광 사택 풍경 제목은 ‘누룽지’다. ‘늘 눕고 싶다, 발을 꺾고’ ‘덩그러니’ ‘그만 두어라 그만 두어라’ ‘생채기 봄의 양지’ ‘녹슨 봄’ ‘잔기침’ ‘무엇이 무엇이더냐’…. 시 저리가라다. 황재형의 그림은 이제 전시 제목처럼 ‘쥘 흙은 있어도 누울 땅은 없는’ 사람들 속으로 풋풋하게 말없이 접선한다.

6일 오전 11시 ‘황재형 작가와 함께하는 주말 브런치’ 행사가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02-720-1020.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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