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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속 세종시를 꺼낼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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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서울’은 지리적 개념이 아니었다. 김영삼·김대중도 거제·하의도 출신이 아니었다. ‘서울 사람’이었다. 여의도의 제왕이던 양김(兩金)의 호령 밑에서 그는 “서울 정치를 뒤엎는 게 정치하는 목표”라고 술회했었다. 서울을 개혁하려면 최고의 기득권층인 청와대와 정부를 먼저 하방(下放)시키자는 게 그의 ‘행정수도 건설’이다.

곳곳에 수정을 막는 뇌관도 설치했다. 지방 혁신도시에 여타 공공기관을 대거 이전시키는 것이었다. 현 정부 세종시 신안의 논리는 정부부처가 분산되면 시간·비용의 낭비가 많다는 거였다. 이 안대로 정부 부처가 서울에 남는다면 공공기관에선 역(逆)으로 “서울과의 거리 비효율”을 들어 혁신도시행을 거부할 명분이 생긴다. 공터가 될 우려로 혁신도시가 소란해질 수 있다. 전국에 ‘수정 불가’의 대못을 촘촘히 심어놓은 것이다. 당초 세종시 계획안엔 ‘경호연수부지’라는 묘한 명칭의 구획도 지정됐다. 노 대통령의 특명에 따라 대통령 제2관저를 짓기 위한 코드명이었다. 청와대는 못 가도 대통령은 가게 하려 했던 결기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도 세종시 원안 약속은 ‘외길’인 듯싶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뒤 18년을 칩거하며 역사의 뒤안길을 배회했던 그에겐 ‘신의’ ‘약속’이 으뜸의 잣대였다. “믿었던 이들의 배신에서 욕망·권력에 대한 집착을 똑똑히 보았다”며 “한번 배신하면 그 다음 배신은 더 쉬워진다”고 술회했다. “메모 밖을 넘지 못하는 수첩공주”라는 비아냥에 그는 “현장 민원을 적어놓는 약속수첩”이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연설 때 그는 “conduct a nuclear test”라는 발언 중 동사 ‘conduct’의 억양 강세를 앞에다 잘못 뒀다. 그러자 수차례 반복하며 방점을 뒤로 옮기려 애써 화제를 낳았다. 좀체 선을 넘지 않는다.

박 전 대표 측은 세종시의 정치적 셈법은 없다고 한다. 그렇든 아니든 ‘원안 외길’은 불리할 게 없어 보인다. 충청권 국회의원이 ‘한 석’뿐인 한나라당의 차기 주자로선 자신만의 충청권 기반 재건이 다급하다. 세종시 신안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충남·북 여론은 45.4%, 52.4%(한국갤럽)다. 그런데 박 전 대표의 ‘신뢰와 약속’ 입장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67.1%, 67.6%다. 비슷한 질문인데도 말이다. 호남에선 71.3%가 박 전 대표 견해에 공감한다. 자신의 브랜드로 그는 이미 ‘+α’의 점수를 쌓아가고 있다.

세종시 무산 시 차기 대선 국면에서 그의 ‘정치적 책임론’도 거론된다. 그러나 그에 필적할 여야의 차기 주자가 보이지 않는 게 변수다. 이대로라면 여권에선 “될 사람 밀자”는 대세론에 모든 게 잊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 전 대표와의 타협이 이래저래 힘들어 보이는 이유다.

2008년 촛불시위 정국의 마무리 무렵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측근의원에게 한탄을 한다. “남은 건 세종시다. 행정부 이전, 이걸 어떻게 하느냐. 선거 때 ‘어어’하다 한다고 했지만 보통일 아니다. 나는 괜찮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현장 경리로 일을 시작했던 그는 현대건설 사장 때도 공사장에 버려진 못과 부속품까지 재수거했다. 나라가 기울 국가적 낭비라고 단정한 ‘행정부처 분산’을 막는 게 기독교 장로인 그에겐 신앙에 가까운 소명(召命)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부와 여권 주류의 마음가짐이다. 튼실한 ‘노무현 대못’을 뽑고, ‘박근혜 외길’을 되돌리고, ‘MB의 소명’을 이뤄내야 할 기적(奇蹟)에 맞설 비장함과 절박감이 도통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권력의 내공(內功)이 부족한 정몽준 대표, 정운찬 총리에게 세종시의 무게는 버거워 보인다. 대통령이 이젠 직접 나서야 한다. 서울시 상인팀이 청계천 상인을 4200번 찾아갔듯 말이다. 친박이든, 야당이든, 충청주민이든 만나고 설득하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외의 묘수가 있겠는가. 설혹 세종시가 차기 대선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더라도 진흙 묻힌 만큼의 진정성을 외면당하진 않을 것이다. 이 문제가 워낙 지난(至難)해서다.

최훈 논설위원·선임정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