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선 닮은 상황 다른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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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륜과 개인적 매력의 한판 승부'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 '재검표, 부정의혹 논란' . 올해 미국 대선에 나타난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는 1960년 민주당 존 F 케네디와 공화당 리처드 닉슨의 대결 상황과 여러 모로 비슷하다.

당시 닉슨 후보(부통령)는 경륜을, 케네디 후보(상원의원)는 개인적 인기를 내세웠다. 현재 고어와 부시의 대결양상도 당만 바뀌었을 뿐 각 후보가 풍기는 이미지는 닮은 꼴이다.

특히 개인적 매력을 앞세운 부시가 케네디처럼 TV토론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선거전의 결과가 수시로 바뀔 만큼 불꽃 튀는 각축전을 보였다는 점도 빼닮았다. 두 선거 모두 투표 다음날 오전까지 당선자를 가려내지 못했다.

60년 대선 직전 닉슨과 케네디의 지지율은 갤럽 여론조사에서 47%씩 동률을 기록했다.

결과는 케네디가 닉슨을 전국 득표율에서 0.2%포인트(11만8천5백74표)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그러나 주별 승패로 확정되는 선거인단에서는 3백3명을 확보, 닉슨의 2백19명을 여유있게 따돌렸다.

이번 선거에서도 고어와 부시 사이의 전국 득표율 차이는 불과 1% 안팎에 머물 만큼 시소게임이다.

최종 당락을 결정짓는 플로리다의 투표집계에서도 한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박빙의 혼전을 벌이고 있다.

재검표와 개표과정에서 부정의혹이 제기돼 공정성 의혹과 시비가 불거진 것도 유사하다. 닉슨은 60년 대선에서 "다 잡은 승리를 빼앗겼다" 고 믿고 있다.

당시 하와이주의 첫 개표 결과는 닉슨이 1백41표 더 얻은 것으로 발표됐으나 재검표 결과 거꾸로 케네디가 1백15표차로 승리한 것으로 번복됐다.

일리노이에서는 민주당 리처드 데일리 당시 시카고 시장이 조직적 부정선거를 통해 케네디 승리를 도왔다는 의혹도 강하게 제기됐다. 당연히 공화당측으로부터 2차 재검표 요구가 빗발쳤다.

올해도 팜비치 선거구의 불공정한 투표용지 시비, 재검표 결과에 따른 개표과정의 실수가 드러나고 있다. 고어측은 패배시 법정투쟁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닉슨은 선거 다음날 정오 패배를 과감히 인정해 정국을 수습했다는 점이 지금과 크게 다르다.

이는 정치적 계산에 능한 닉슨이 법적 대응을 했을 경우 실익이 없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는 치사한 정치인으로 낙인찍힐 경우 오히려 차기 대선 출마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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