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감·좌절감 가슴앓이 … 정신과 찾는 임원 꽤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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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에서 좌절감·공허함을 호소하는 대기업 임원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기업 고위직을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윤대현(42·사진) 신경정신과 교수의 말이다. 그는 전체 환자의 40% 정도가 기업의 임원·최고경영자(CEO)다.

철강업체에서 일하는 50대 임원 A씨는 밤잠을 못 이뤄 윤 교수를 찾았다. 해외 지사의 영업총괄이던 그는 경기 침체로 실적이 나빠지자 보직에서 밀려났다. A씨는 “회사에 청춘을 바쳤는데 나이 들어 ‘이젠 필요 없다’는 식의 대접을 받으니 견디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역시 50대인 통신회사 임원 B씨도 숙면이 어려워 상담을 받았다. 그는 A씨와 달리 차세대 CEO감으로 주목받던 잘나가는 인물이다. B씨는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라며 “회사의 지위는 높아졌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기업 임원은 처음엔 ‘잠을 잘 못 잔다’며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수면 장애, 집중·기억력 저하와 함께 별 것 아닌 일에 짜증을 많이 내는 것이 대표적인 3대 증상”이라고 말했다. 이는 ‘스트레스성 뇌 피로증’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뇌를 너무 혹사해 생긴 증상이다.

그는 “많은 임원이 능력을 ‘풀 가동’해야 좋은 성과가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실은 자기 능력의 70% 정도만 일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휴식과 취미생활에 쓰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좌절·허무가 찾아온다고 곧바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상당수가 나중에 후회한다고 윤 교수는 전했다. 이럴 경우 증상이 더 나빠지기 쉽다. 그는 “회사에서 퇴직 발령을 낸 게 아니라면 일단 전문의와 상담해 마음을 안정시킨 뒤 결정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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