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소리의 공간, 빛의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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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3개의 대형 스크린이 놓인 무대에 조명이 꺼지면 도심의 소음을 배경으로 뉴에이지 풍의 피아노 연주가 들린다.

객석을 가로질러 무대로 향하는 연주자의 발끝부터 머리까지 감싼 무채색 의상은 일상의 탈출, 제의(祭儀)의 시작을 알린다.

'2000 새로운 예술의 해' 음악부문 사업의 하나로 지난 3~5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소리의 공간, 빛의 여행' (총연출 및 대본 원일)은 음악에 조명.영상.몸짓을 결합한 공연이 미래의 새로운 음악양식이 되리라는 전망에서 출발했다.

텅빈 무대를 커버하고도 남는 첨단기법의 조명 덕분에 무대진행이나 연출은 비교적 매끄러웠다.

국악기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젊은 국악' 의 현단계를 한눈에 보여준 것이나 인도음악(김창수).알토 색소폰(강태환)과 무용(이시데 다쿠야.김은희)의 만남도 참신했다.

하지만 연출자의 의도대로 이날 공연을 하나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세부적인 예술적 완성도가 떨어졌다.

대형 스크린에 등장한 것은 하모니컬러(음악의 볼륨에 따라 영상 이미지가 변화하는 시스템)의 단조로운 반복 뿐이었다.

젊은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위촉해 초연하겠다는 애초의 기획안과는 달리 모두 연주자(겸 작곡자)의 즉흥연주에 의존해 지루한 느낌이었다.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미리 녹음된 강렬한 테크노 비트에 맞춰 연주하는 민영치(장고)와 타악그룹 '공명' 의 무대에 할애됐다.

주인공 소년이 타임 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다녀온다는 줄거리를 설정하고 연주자들이 객석으로 퇴장하는 등 드라마적인 요소를 삽입했지만 하나씩 뜯어보면 각 출연자들이 다른 무대에서 들려준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이 '작품' 을 재공연할 의사가 있다면, 작품에는 소홀하고 무대연출에만 신경을 쓰는 듯한 느낌을 준 이번 틀에선 탈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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