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역감정 악화 누구 탓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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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크게 왜곡돼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金대통령이 이틀 전 울산시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역감정을 자멸행위라고 지적하면서 그 원인을 정치인들이 선거에 악용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점과 일부 언론이 상업주의에 따라 선정적으로 보도한 때문이라며 정치인과 언론에 그 책임을 떠넘겼다.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선거에 이용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정치인 중에는 金대통령 자신도 포함돼 있고, 아마도 그 자신 지역감정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와서 그 정치인들이 모두 남이란 말인가. 야당처럼 특정지역 몰표를 기초로 한 민주당이 남의 당인가.

우리는 대선.총선 때의 극심한 지역감정 현상들을 봐왔기 때문에 현 정부가 들어서면 지역감정을 그나마 완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지역감정을 오히려 전보다 더 악화시켜 놓았다. 악화의 원인이 편중인사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편중인사란 없으며 과거 TK.PK 편중인사를 시정해가는 과정에서 과거 특혜를 누리던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이 가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측 주장의 근거는 3급 이상 고위직 40% 이상이 영남 출신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도 호남 출신 고위 공직자가 없었던 게 아니다.

다만 항렬은 높되 요직에 기용되지 못하고 한직으로 도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지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했었다.

이 정부 들어선 후로는 정부 요직은 물론 정부 투자기관이나 산하 단체의 감투를 특정 지역이나 특정 정당 출신이 거의 휩쓸다시피하고 민간기업까지 줄대기 지역인사를 하는 바람에 그 파장이 광범하게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여러 부정부패에서 특정 지역 인맥이 두드러지게 서로 엮어져 나타나는 '연줄현상' 도 그런 여파라 볼 수 있다. 다음 대선에선 지역감정이 극적으로 표출될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金대통령은 "취임 후 국민 화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지만 이 문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없다" 고 했는데, 지역감정 문제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은 바로 정부의 편중인사가 가장 큰 원인이며 이런 인사정책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할 대통령이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동의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金대통령이 지역 순시에 나선 것이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국민 대화합을 모색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굳이 이런 발언으로 이 지역 주민들의 반감을 더 자극할 필요가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일부 정부 인사들이 툭하면 인용하는 '숫자놀음' 이나 '균형인사' 같은 말이 현실 왜곡이라는 사실을 金대통령이 깨닫지 못하는 한, 이 정부가 부르짖는 '국민 화합' 이 국민의 가슴에 와닿을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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