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버냉키, 연임 성공했지만 ‘가시밭길’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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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사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연임이 확정됐다. 미 상원은 28일 버냉키 의장 인준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70표 대 반대 30표로 통과시켰다. 여당인 민주당이 상원에서 59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공화당과 무소속 의원 11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반대가 30표를 기록, 역대 FRB 의장 신임안 표결에서 가장 많았다. 종전 반대표를 가장 많이 받은 FRB 의장은 1983년 16표를 받은 폴 볼커였다. 임기가 31일인 버냉키 의장의 연임 표결을 28일까지 미룬 것도 반대 여론이 워낙 강해 백악관과 민주당이 막판까지 표 단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버냉키 의장의 입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연임엔 성공했어도 버냉키 앞엔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의회가 추진 중인 FRB 규제 법안에 맞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는 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상원과 하원은 이미 소비자보호 업무를 FRB에서 떼내는 법안을 발의했다. 상원 법안엔 아예 FRB와 독립된 소비자보호기관을 신설하는 규정이 들어 있다. 하원은 FRB도 의회의 감사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위기 수습을 위해 동원한 비상조치를 거둬들이는 ‘출구전략’ 시기를 정하는 것도 그로선 큰 부담이다. 섣불리 금리를 올렸다간 가까스로 살아나고 있는 경기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반대로 실기(失機)하면 자산시장 거품이 다시 일어 제2의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다. 더욱이 FRB의 일거수일투족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정치권으로선 금융위기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하다. 버냉키가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함께 공화당 의원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는 이유다. 이번 인준안 표결에서 나온 반대표도 대부분 선거를 앞둔 의원이 던졌다. 버냉키의 사소한 실수도 혹독한 여론의 도마에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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