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두 얼굴 다룬 '디지털 제국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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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문제는 디지털이 아니라 디지털을 다루는 인간 그 자체다.

굴뚝산업이건 디지털이건 흥하고 망하는 것은 인간세상의 다반사지만 그 흥망사(興亡史)를 관통하는 줄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진실이다.

'로마제국의 흥망' 이나 '강대국의 흥망' 을 쉽게 연상시키는 책 제목에서 이미 저자의 의도는 간파된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야말로 경제 발전의 어떠한 단계이든지 간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 책은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익스플로러 사이에 벌어진 브라우저 전쟁 그리고 미국 정부와 MS 사이의 대결(독점금지법 위반소송)을 시간 순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속단해선 안된다. '디지털제국의 흥망' 은 흘러간 옛 노래가 아니다.

또 우리가 신문지상에 스쳐간 기사의 반복과 선명하게 구분된다. 오히려 수박 겉핥기로 읽었던 사건의 행간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사실 미국 정부와 MS 사이의 역사적 소송은 현재진행중이며, 이는 무엇보다도 정보기술산업이 경제발전의 핵심 엔진으로 간주되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사건이다. 게다가 벤처기업의 도덕성을 문제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빌 게이츠의 두 얼굴을 그리고 있다.

하나는 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이 책이 1994년에서 2000년 9월까지 일어난 실제 상황을 다루고 있으므로, 70년대 초반 하버드대학생이던 청년 빌 게이츠의 이야기는 이 책엔 없다.

대신 내비게이터를 만든 프로그래머 마크 안드리센에게서 순수와 야망에 불타는 청년 빌 게이츠의 20대 때 모습이 겹쳐진다.

또 하나의 빌 게이츠의 얼굴은 디지털제국의 황제가 되어 안드리센이 만든 내비게이터를 물리치려고 온갖 로비와 협박을 다하는 어두운 모습이다.

어느 얼굴이 게이츠의 참모습일까. 안드리센도 사업에 성공을 해 지금의 빌 게이츠 같은 나이와 위치에 가면, 그 때 역사는 또 다시 되풀이될 것인가.

이 책의 저자는 공무원(현재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과장) 이다. 미국 허드슨연구소에 파견근무할 때 충실히 수집한 자료와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자칫 보고서 형식의 딱딱한 일지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책을, 한편의 흥미진진한 전쟁소설 혹은 무협지처럼 술술 넘어가게 하는 점에서 저자의 만만치 않은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솔직히 책 읽는 내내 한국 관료의 해당분야 전문적 식견이 이 정도만 된다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두가지 의문점. 하나, 인터넷 대중화를 선도한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는 왜 익스플로러에게 무너졌을까. 둘, 미국 정부는 왜 자국의 자랑일 수도 있는 MS에 반독점법을 적용해 기업을 분리시키려고 하는가.

'디지털 제국의 흥망' 은 이 두개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다. 사실 두개의 질문은 '독점' 이라는 하나의 문제로 통합된다.

MS윈도를 지탱해 주는 힘은 윈도의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시장에서 MS윈도만이 살아남은 이유는 수많은 응용프로그램 제작회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94년 10월, 내비게이터가 등장해 영원한 제국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일은 시작된다. 내비게이터는 MS윈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인터넷 브라우저. 이른바 '미들웨어(middleware)' 프로그램이다.

이를 제거하기 위한 MS측의 파상공세. 넷스케이프는 결국 99년 3월 아메리카온라인(AOL)에 인수된다.

MS측의 완승. 그러나 미 정부와 MS간의 대결에서 사법부는 MS의 윈도 독점에 대한 위법판결을 내린다.

이 책은 원고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다. 시각은 입장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당신이 벤처를 꿈꾸는 젊은이라면, 또 변호인이나 배심원의 입장에 선다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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