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전쟁은 장난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사자 우리에 뛰어든 젊은이가 있었다. 사자 엉덩이를 걷어찬다. 화가 난 사자가 덤빈다.

위기일발, 직원들 도움으로 겨우 구출되긴 했지만 온몸엔 상처투성이. 입원 치료받고 퇴원소감이 걸작이다.

"사자는 세던데요. " 딱한 사람아, 그걸 몰랐단 말이냐. 하긴 그래, 타잔은 맨손으로도 이기지 않던가.

요즈음 사람들의 전쟁감각도 이렇게 순진하다. 그게 얼마나 처절하고 참담한 줄 모르고 있다.

입시전쟁.귀성전쟁, 워낙 전쟁이 많아서일까. 전혀 실감이 안나는 모양이다. 그런 전쟁 한다고 사람 죽을 일도 아니고, 경험을 못해 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요즈음 화제의 영화엔 남북 군인이 휴전선을 넘나들며 장난을 친다. 선물도 주고받고. 신세대 감각은 역시 귀엽고 순진하다.

이쯤되면 이건 전쟁이 아니다. 무슨 장난이나 게임을 하는 기분이다. 전쟁공포증에 시달려온 전쟁세대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긴 지난번 중동전쟁 때 미국의 CNN방송이 바그다드 한복판에서 생중계를 했다. 전쟁을 생중계한 것이다. 더구나 적국 방송이 적진에서. 이건 공상소설에도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 게임쯤으로 생각한 데서 전혀 무리가 아니다. 인터넷은 온통 전쟁게임이다. 죽이고 살리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이지 전쟁이 아니다.

거기에다 전쟁영화나 소설도 참으로 인간적이다. 전선 참호에서 우정이 피어나고 사랑이 무르익는다. 감동적인 휴먼스토리다.

그래서일까. 전쟁의 와중에도 오폭(誤爆)이라고들 비난의 소리가 거세다. 민간시설을 폭격했으니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곤 전쟁영웅을 마치 전범 재판하듯 힐난 문책한다. 이게 모두 제 나라에서 이러니 더욱 어리둥절하다. 참고로 말해두지만 오폭이란 우군진지를 잘못 폭격했을 때 쓰는 말이다.

명심하라. 양심적이니 도덕적이니 하는 전쟁은 없다. 오직 승자만이 정의다.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 되지만 수백, 수천을 죽여야 영웅이 되는 게 전장의 냉혹함이다. 게임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다. 전쟁은 전쟁일 뿐 낭만이니 인도적이니 하는 것도 사치다.

기억하라. 우리가 평화롭게 사는 지금 이 땅도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였다. 선열들의 뜨거운 피로 얼룩진 성역이다.

종교인에게 성지가 있듯이 우리에겐 선열들이 피 흘려 지켜준 이 땅이 성지다.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그 전쟁의 와중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아니면 비열하게 군대를 기피한 그 후손들이다. 속죄하는 뜻에서도 이 땅을 지켜야 할 각오를 다시 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 자세다. 일단 유사시에 과연 잘 지켜낼 수 있을까. 전쟁감각도 그렇고 병영분위기도 전혀 옛날같지 않다.

기압이 빠진 것 같다. 게임도 즐기고 아주 낭만적이다. 오죽하면 코미디 소재로 등장할까. 전쟁보다 놀이감각에 배어 있다.

지휘관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서울 한복판에 로켓 한방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지금의 우리 정신상태에서 왜 그런 영화는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민방위 훈련에서 예비군 훈련까지, 전혀 진지한 구석이 없다. 형식적이다. 이래서야 과연 우리가?

이게 전쟁공포증의 발작이라 탓한다면 스위스를 보라. 전국민 전시훈련을 지켜보라.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그들의 전쟁교본은 한마디로 "죽을 생각으로 살라" 는 훈령이다. 가정집마다 자하실에는 기관총에서 실탄까지 전쟁준비가 완벽하다. 이런걸 보노라면 누가 감히 넘볼 수 있으랴. 평화의 나라, 스위스는 이렇게 지켜지고 있다.

북한에 너무 많이 준다. 이러다 함께 망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나도는 걱정들이다. 하지만 어떤 대가도 전쟁보다 싸다.

화평에 도움이 된다면 아깝게 생각해선 안된다. 경수로.식량, 최근엔 미사일까지. 우리도 어려운데, 심지어 통일 공포증에 걸린 사람도 있지만 통일은 해야 한다.

당위론이 아니고 계산으로 따져도 그래야 한다. 이대로 몇년이 더 갈지, 휴전선 관리비용을 생각해보면 천문학적 계산이 나온다. 냉정히 따지면 그래도 통일이 싸다.

이제 다시는 이 땅에 전쟁만은 없어야겠다. "어떻게 지킨 땅인데. "

이시형 <정신과 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