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NLL 흔들기’ 저강도 도발 … 합참, 함정·전투기 전방 배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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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7일 네 차례에 걸쳐 100여 발의 해안포를 발사했다. 우리 군은 벌컨포로 경고사격을 하며 교전수칙에 따라 즉각 대응했다. 사진은 백령도 해병대 벌컨포 진지. [중앙포토]

북한이 백령도와 대청도 동쪽 해상에 선포한 항행금지구역에 27일 해안포를 100여 발 사격하고 나선 것은 서해를 잠재적 분쟁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다. 현재의 북방한계선(NLL) 체제를 뒤흔들기 위한 저강도 도발의 성격이 강하다. 북한은 일단 이달 29일까지 사격을 하겠다고 러시아 해상교통 문자방송을 통해 밝혔지만 그후에도 사격을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 항행금지구역 선포 기간을 군 동계훈련 기간인 3월 29일까지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북한군 총참모부도 “포 실탄 사격 훈련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군은 이날 오전 9시5분부터 해안포를 사격하기 시작했다. 1차로 황해남도 옹진반도에서 백령도 동쪽 해상에 설정한 항행금지구역으로 20여 분에 걸쳐 10여 발을 쏘았다. 오전 9시30분∼10시16분에는 기린도 방향에서 대청도 동쪽에 설정한 항행금지구역으로 20여 발을 사격했다. 오후 3시25분부터는 3차로 60여 발을, 오후 8시부터는 간헐적으로 수십 발을 백령도 쪽으로 발사했다.


해안포는 정교하게 조준됐다. 항행금지구역 2곳은 모두 NLL을 경계로 남북한 해역에 걸쳐 있지만 북측 해역에만 쏘았다. 북한군이 쏜 포탄은 NLL에서 2.8㎞ 동쪽의 북한 해역에 떨어졌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남한이 도발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군이 해안포의 파괴력을 시위한 측면도 있다. 옹진반도와 기린도의 산속 동굴 진지에 배치한 해안포로 한 곳을 집중적으로 맞힐 수 있다는 것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고속정이 항행금지구역에 있으면 명중시킬 수 있다는 위협이다. 북한군이 보유한 해안포는 구경 76㎜와 100㎜, 122㎜, 130㎜ 등으로 사거리가 13∼34㎞로 다양하다. 옹진반도나 기린도에서 발사하면 백령도와 대청도 전체가 포 사정권에 들어간다. 북한 해안포의 정확도는 가로 50m, 세로 100m 정도여서 특정 해역에 집중적으로 사격하면 작은 고속정도 맞힐 수 있다는 게 군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우리 군은 교전수칙에 따라 즉각 대응했다. 백령도 해병대는 북한군이 옹진반도 쪽에서 1차 해안포 사격을 하자마자 벌컨포로 경고사격했다. 벌컨포는 저고도 대공포로 사거리가 3∼4㎞여서 NLL 부근까지 미치지 못한다. 군 당국은 북한군이 해안포를 쏘기 전부터 발포 징후를 파악해 대비했다. 이에 따라 해군의 각종 함정들이 전방 지역에 배치됐고 중부 지역의 공군기지에서도 F-16 전투기 등이 발진했다고 한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도발하면 그 수준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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