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위의 ‘41세 청년’ 이창수 골동품이라니, 아직은 쓸 만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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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창수

소처럼 묵묵히 앞만 보고 왔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지만 코트에 서는 게 마냥 좋았다.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선배들은 물론 동기들도 이미 코트를 떠난 뒤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 앞에는 ‘최고령’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969년생 프로농구 선수 이창수(41·창원 LG) 얘기다.

‘백전노장’ 이창수가 새로운 고지를 밟았다. 이창수는 24일 울산에서 열린 모비스전에 출전해 KBL 통산 아홉 번째로 500경기 출전의 금자탑을 쌓았다. 매 시즌 평균 38경기 정도 뛰며 달성한 대기록이다. 실력은 물론이고 꾸준한 몸 관리가 뒤따랐기에 가능했다.

1992년 성인 무대에 데뷔한 이창수는 프로농구 원년인 97년부터 13시즌 동안 코트를 누비고 있다. 현역 최고령이자 프로농구 역대 최고령이다. 이전 최고령 기록은 허재(현 KCC 감독)와 표필상(전 SBS)으로 둘은 우리 나이 마흔에 코트를 떠났다. 전자랜드를 이끌고 있는 유도훈 감독은 이창수의 2년 선배다. 현 소속팀인 LG 강을준 감독도 이창수보다 겨우 4살 많다. 코트보다는 벤치가 어울릴 법한 나이다.

강 감독은 이러한 이창수를 두고 ‘골동품’이라 부른다. 지난 19일 전자랜드 서장훈(36)과의 대결을 앞두고는 ‘골동품과 국보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창수는 아직도 ‘쓸 만한 골동품’이다. 경기당 11분45초 출전에 2.2점, 1.8리바운드라는 개인 기록은 뒤로 넘겨두자. 그는 매 경기 LG의 후배들에게 ‘투지와 끈기’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창수의 존재 가치는 19일 전자랜드전에서 다시 한번 빛났다. 이창수는 시즌 최다인 29분37초를 뛰며 서장훈을 꽁꽁 묶었다. 3쿼터 중반 숨이 턱까지 차올라 강 감독에게 먼저 교체 요청을 할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서장훈은 이날 22점을 넣었지만 11점은 이창수가 5반칙으로 코트를 나간 뒤였다. 이창수는 6점·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공격에도 힘을 보탰고 LG는 89-81로 이겼다. 당시 강 감독은 “이창수에게 90점을 주고 싶다. 이창수의 몸을 날리는 수비 덕분에 후배들이 한발 더 뛰었다”고 말했다.

LG 주전 센터 백인선(30)은 “창수 형이 한참 어린 후배들과 몸싸움을 할 때마다 나도 젖 먹던 힘까지 뽑아내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모비스에서 은퇴 기로에 섰던 이창수를 강 감독이 LG로 데려온 것도 ‘기록보다 더 가치 있는 정신’을 원해서다. LG구단 관계자는 “이창수의 역할에 120% 만족하고 있다. 그 덕분에 팀에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창수는 “아직까지 20분 정도는 뛸 수 있다. 작은 힘이나마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홍삼 외에는 딱히 먹는 보약이 없다. 팀 훈련에 빠지지 않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밝혔다.

‘돈 때문에 뛰는 것이냐’는 다소 불편한 질문을 던졌다. 이창수는 “솔직히 돈은 먹고살 만큼 벌었다. 아직은 코트에 미련이 남아 있어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미련의 정확한 의미를 묻자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올 시즌 우승을 하고 나면 정답이 나올 것 같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다면 내년에도 선수로 뛰겠다”며 웃었다. 

김종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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