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트라다 벼랑끝 몰려…시민들 하야요구 가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조셉 에스트라다(사진) 필리핀 대통령이 사면초가(四面楚歌) 상태에 빠졌다.

야당 의원들은 18일 의회에 탄핵안을 제출했고, 종교.시민.경제계 지도자들도 하야를 거듭 촉구하고 나섰다.

◇ 탄핵안=야당의원 41명은 이날 수뢰.독직 혐의를 이유로 에스트라다에 대한 탄핵안을 하원에 제출했다.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하기 위해선 전체의석(2백17석) 가운데 3분의1 이상(73석)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여당인 민족주의자인민투쟁당(LAMP)이 1백60석을 차지하고 있다. 또 상원 역시 여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탄핵안이 가결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 사임 압력=가톨릭과 시민 지도자 등이 하야를 촉구하고 나서 사임을 요구하는 시민의 시위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1986년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대통령 축출을 이끌었던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17일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수뢰 혐의가 해소될 때까지 집무를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이날 마르코스 축출운동의 상징이었던 노란색 옷차림으로 나타나 당시의 '민중의 힘(피플 파워)' 운동을 상기시켰다.

이에 앞서 하이메 신 추기경도 지난주 성명을 내고 "대통령은 잇따른 비리사건으로 국민을 이끌 수 있는 도덕성을 상실했다" 며 사임을 촉구했다.

필리핀은 인구 85%가 가톨릭 신도여서 신 추기경의 영향력이 크며 그는 마르코스 축출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70%를 웃도는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부통령(여)이 등을 돌린 것도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다.

아로요는 자신이 겸하고 있던 사회복지부 장관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17일 에스트라다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야당 연합전선을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 뇌물 의혹=에스트라다는 불법 도박업자로부터 지난 2년간 모두 10억페소(약 2백50억원)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9일 의회 청문회에서 뇌관을 터뜨린 최초의 폭로자는 에스트라다의 옛 친구며 뇌물 전달 역할을 했던 루이스 싱손 일로코스수르주 지사였다.

이후 불법도박 사건을 수사 중인 지방경찰 간부와 도박업자들이 대통령의 도박연루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을 속속 공개하고 있다. 싱손은 에스트라다를 "도박업자들의 지배자" 라고 표현했다.

뇌물 스캔들과 정국 혼란으로 필리핀 페소화는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주가도 2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예영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