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후 상환제’ 시행령 보니 … 빌린 등록금 제때 안 갚으면 과태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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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대학생들이 올 1학기부터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이용해 등록금을 빌린 뒤 재산이 생겼는데도 그 사실을 국세청에 신고하지 않거나 대출금을 갚지 않으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해외로 이주하거나 유학을 가려면 대출금을 모두 갚아야 하며 이를 어기면 거주여권을 발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4일 이런 내용의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채무자의 상환 의무, 소득별 상환 방법 등에 대한 세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미납에 대한 처벌조항이 대학생 6만여 명이 1학기 대출 신청을 마친 후에 마련된 데다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직해도 1년은 갚아라”=이날 입법예고 된 시행령 13조 7항엔 ‘대출금을 갚다가 실직해 소득이 끊겨도 바로 전해에 연간 소득액에 따라 세금 납부 사실이 있으면 그에 따른 원리금은 계속 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국세청이 다음 해 연말정산을 통해서만 실직 사실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실직하더라도 다음 해 연말정산 때까지는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과부 정병선 학생학부모지원과장은 “법에는 실직하면 상환 의무가 없어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국세청은 실직 여부와 관계없이 그 다음 해 연말정산을 통해 소득금액을 포착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시차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취업을 한 대학생 A가 2020년 1월 실직하더라도 2019년 전체 소득의 20%를 2020년에는 매달 상환해야 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실직하기 전에 1년치 상환금은 미리 아껴두라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과태료 기준도 다른 대출제보다 높게 책정됐다. 종합소득세·양도소득세 등으로 소득이 발생해도 미신고할 경우 20만원(의무상환액 연 100만원 미만)에서 최대 500만원(의무상환액 연 2000만원 이상) 등이다. 특별법에 따르면 채무자는 연 1회 이상 본인과 배우자의 주소·직장·부동산 등 재산 상황과 금융재산 정보를 신고해야 한다. 종합소득세·양도소득세 등은 소득세법에 따라 의무상환액을 신고한 뒤 납부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재학생이나 취업 초년생은 복잡한 재산 신고를 미처 챙기지 못할 수 있는 데도 교과부는 재산 신고 누락이 반복되는 경우 과태료를 가중 부과하는 조항까지 마련했다. 또 대출 원리금을 모두 상환했다는 증명서를 외교통상부에 제출하지 않으면 해외 이주용 거주여권 발급이 불가능해진다.

교과부는 “문자메시지(SMS)나 e-메일로 모든 채무자에게 수시로 재산 신고와 납부를 고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강제 환수 안 하면 제도 유지 못해”=교과부 정 과장은 강한 처벌 규정에 대해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 비슷한 제도를 운용한 나라의 경우 국세청과 정보를 공유해 강제 수납하지 않아 제도가 오래가지 못했다”며 “과태료·여권 발급 제한 등 강도 높은 제재 규정을 둔 것은 미납이 속출할 경우 재정 부담을 결국 정부가 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태료 등 처벌 규정을 학생들에게 고지하지 않은 채 1학기 대출 신청을 받은 것은 앞뒤가 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교과부는 대출에 이의가 있으면 다음 달 9일까지 취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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