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지상주의 비판한 '…횡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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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영화관 뉴스 시대〓TV뉴스 이전 영화관 뉴스가 국내외 뉴스를 영상과 소리로 보여줬다. 이때 뉴스의 신뢰성은 해설에 근거했으며, 그 익명적 해설은 이미지들의 의미를 고정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관객들은 그 목소리를 믿어야 했다.

#2할리우드적 TV 시대〓1970년대 초 그 목소리는 월터 크론카이트 같은 유명 앵커로 바뀌었다. 그는 매일 저녁 시청자들의 집에 머문다. 시청자들은 친밀해진 그 때문에 뉴스를 신뢰했다. 미디어 전성시대였다.

#324시간 생중계 뉴스 시대〓이제 앵커는 아웃 직전이다. CNN은 위성방송에 힘입어 24시간 내내 현지에서 뉴스를 생중계를 한다.'당신에게 퍼부어주는 이미지는 진실이다' 는 식이다. 묘한 일은 시청자들이 막상 뉴스의 홍수 속에서 자신들은 배제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커뮤니케이션의 횡포' 는 미디어 분야의 최신 변화 상황을 다룬 멋진 에세이다.

1980년대말 CNN이라는 글로벌한 방송망이 생겨난 이후 '전세계적인 정보의 시대' 에 돌입했다고 규정하고, 현재의 상황을 '냉소적으로 변한 시청자들' '잉여적 존재, 기자의 죽음' 같은 도발적인 용어를 통해 분석한다.

다루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엄숙하지는 않다. 내용 자체가 언론학 그 이상이어서 '포스트 모던 사회에 대한 분석서' 로 꼽힐만 하지만, 서술의 기조가 냉소적이면서도 스타일에 넘친다.

그런 매력 때문에 국내 상당수 언론학 교과서 류 같은 뻑뻑한 통나무를 끌어안은 느낌 대신 감칠 맛이 있다.

이 차이는 무엇보다 프랑스와 한국 지식사회의 글쓰기의 전통 탓이기도 하고, 저자의 이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기호학과 문화사로 학위를 받은 라모네는 파리7대학 교수이자 저널리스트다. 프랑스의 지성을 대표한다고 하는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의 편집장이기 때문이다.

독립된 8편의 글은 한마디로 정보의 폭발과 미디어의 탈(脫)중심화 현상 때문에 매스컴은 외려 위기라고 진단한다.

위기란 산업적 측면에 대한 분석이 아니고,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을 말한다.

민주적 시민사회의 초석으로서의 고전적 언론관의 붕괴, 독립적인 장인(匠人)이라는 기자상의 해체, 기성언론에 대한 수요층의 냉소…. 한마디로 미디어 지상주의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가 보는 언론환경은 황폐하기만하다. TV는 정보과잉 속에서 스스로가 헷갈리고 있고, 신문은 '떠나간 손님' 을 되찾기 위해 한건주의 폭로 성향 내지 선동적인 보도성향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저자는 그 사례로 르윈스키의 스캔들이나 다이애나 비의 사망 당시 전세계 언론이 보였던 광적인 보도태도를 분석한다.)여기에 인터넷 매체의 등장이 언론의 탈(脫)중심화 추세를 부채질한다.

서구 중심의 분석서이지만, 한국의 상황이 거기에서 크게 멀지 않다는 발견도 재미있다. 다소 냉소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매력의 읽을거리임은 분명하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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