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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21세기 '인구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88년부터 97년까지 10년 동안 미국은 전세계에서 9백30만명의 이민을 받아들였다. 같은 기간 중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이 받아들인 이민수는 5백30만명. 인구로 따지면 EU가 미국보다 훨씬 많지만 수용 이민수는 절반 정도에 그친 셈이다.

이민정책에서 나타나는 이같은 개방성의 차이가 오늘날 양측이 보여주는 현격한 경제적 활력의 차이를 낳게 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아니냐고 심각하게 따져묻는 유럽인들이 점점 늘고 있는 모양이다. 그제 영국의 권위지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보도한 내용이다.

당장 9%라는 EU의 고(高)실업률만 생각하면 이민 억제가 불가피하다고 볼지 모르지만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보면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FT는 지적한다.

장기적 인구감소와 노령화가 몰고올 사회.경제적 비용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이민정책의 재고가 시급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신규이민이 없다고 가정할 경우 3억8천만명인 EU의 인구는 2050년 3억1천만명으로 줄고, 노령인구(65세이상) 한명당 노동인구(15~64세)의 비율도 현재 4.1에서 2050년에는 1.9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즉 지금은 네명이 일해서 노인 한명을 부양하면 되지만 50년 후면 두명이 한명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됨으로써 연금제도의 파탄이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각종 출산 장려책에도 불구하고 유럽여성의 평균 출산율은 1.7로 인구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인 만큼 적극적인 이민 수용정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럽의 장래를 걱정하는 이들의 시각이다.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한국여성의 출산율은 지난해 1.42까지 떨어져 선진국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라면 2020년 인구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2050년 전체인구는 지금의 70%로 줄어들 전망이다.

유엔 인구국은 이미 한국도 장기적으로 이민수용이 불가피한 나라로 분류한 바 있다. 유럽의 고민이 남의 얘기가 아닌 셈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기아로 인한 인류의 파멸은 불가피하다" 는 비관론이 영국의 토머스 맬서스가 18세기 말 '인구론' 을 집필하게 된 동기였다.

21세기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인구론을 제시하는 '제2의 맬더스' 가 나온다면 그는 틀림없이 노벨경제학상 감이 될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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