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KAL기 폭파책임 그냥 넘어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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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이 테러 반대의 뜻을 밝히고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제외하기로 함에 따라 북.미 관계가 급류를 탈 전망이다.

북.미 관계의 개선이 한반도의 긴장 완화에 기여하고, 또 북한이 국제사회에 더욱 본격적으로 나올 계기가 마련된 점에서 우리는 이번 합의를 환영한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해온 조건 가운데 테러 반대 및 테러활동 불(不)지원 공약, 국제테러협약 가입을 받아들였고, 북한이 피신처를 제공해온 요도호 납치범과 일본인 납치 문제가 과제로 남게 됐다.

남은 과제는 북.일 관계의 현안이기도 해 북한이 곧 해결에 나설 것이란 조심스런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차수)을 자신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에 파견하고 그 직전에 테러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인 것은 북.미 관계 개선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침체에 빠진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외부로부터 자본.기술.생산재.에너지 등을 시급히 도입해야 하고, 특히 국제 금융기구로부터의 차관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도 테러지원국 명단 제외 및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조치 해제는 북한으로선 당면한 해결과제다.

그러나 북한의 이런 사정들을 이해한다 해도 대한항공기 폭파나 아웅산 폭탄테러에 대해 북한이 아무런 사과나 해명도 없이 넘어가도 우리 정부가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이냐는 점이 과제로 남는다.

북한이 테러 지원국의 낙인이 찍힌 것도 결국 이 두 사건과 직결된다. 수백명의 피해 유족이 시퍼렇게 살아있고 정부 요인과 수행원 십여명이 비명에 간 테러사건이다.

아무리 새로운 협력관계를 위해 과거의 아픈 상처를 잊자 해도 잊을 수가 없다. 테러 당사자의 사과 한마디 없이 어물쩍 넘어가기엔 너무 깊은 상처다.

한.미 공조를 통해 두 테러사건에 대한 북의 명백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남북한의 화해.협력은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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