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미국 공동성명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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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추진키로 했다고 발표한 것은 북.미 대화가 상당히 무르익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외 조치가 이뤄지면 양국 수교협상은 급진전, 수교가 상당히 이른 시일 안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로 인정받는 것은 물론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자금을 구할 수 있어 경제개발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도 유리해진다.

이번 조치는 북한의 사실상 서열 2인자인 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특사로 8~12일 미국을 방문하는 데 대한 답례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북한은 테러지원국 해제를 북.미 고위급 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아왔으나 해제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최고위급 인사인 趙부위원장을 미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당초 미국은 북.미 고위급 회담이 열려도 백남순(白南淳)외상이나 김용순(金容淳)아태평화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급이 한참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인민군 차수인 국방 책임자가 워싱턴을 방문한다는 점에서 미국은 고무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러한 북한의 특단조치에 '해제조치 추진' 으로 답례해야 북.미 회담이 더욱 순조롭게 진전되리라고 판단한 듯하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에 명시적으로 테러포기를 선언하고 각종 반(反)테러 협약에 가입할 것과 북한이 보호하고 있는 일본 적군파 출신 요도호 납치범들을 국외추방할 것을 요구해왔다.

미 국내법상 이런 조치가 있어야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북한은 요도호 납치범들이 국제법상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망명객이라며 미국의 요구를 거부해왔으나 이번에 수교협상의 큰 포석을 위해 미국에 '법적 요건 충족' 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북.미수교라는 큰 '사업' 을 위해 약간의 성의로 모양새를 갖춰준 것이다.

사실 미국의 요구인 적군파 추방과 테러지원 중지 약속은 비교적 손쉬운 것이어서 조만간에 양국이 절충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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