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더불어] 미혼모 껴안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려온 金슬기(가명.17)양은 2년 전 폭력을 피해 또래들이 모이던 자취방에서 밤을 보냈다.

金양은 거기서 동네 오빠에게 성폭행당했다. 이후 보건소를 찾았다가 임신 7개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집에 돌아갈 수 없는 金양의 사정을 알게 된 보건소는 슬기양을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 미혼모 보호시설 '애란원' 에 보냈다.

열다섯 나이에 엄마가 된 슬기양은 아이를 입양시킬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이 밀려들어 아기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이후 아버지는 가출했고 金양의 어머니가 애란원을 찾아와 딸을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金양은 출산 사실이 알려져 퇴학당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金양은 종종 애란원을 찾아와 또래 미혼모.상담원들과 어울리며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미혼모들은 가족과 학교로부터 버림받는 경우가 많다" 며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 고 말했다.

애란원에서는 자원봉사자 40여명의 도움으로 성교육.상담, 학습 지도.꽃꽂이.피아노.원예 등의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8년 동안 이 곳에서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추인수(29)씨는 "미혼부(父)들은 책임조차 지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봉사활동에 나섰다" 며 "미혼모들의 순수한 모습들을 보며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워간다" 고 말했다.

애란원은 1960년 미국인 선교사가 설립한 여성보호시설로 73년에 미혼모 보호사업을 시작했다. 8명의 직원이 미혼모들의 상담 및 진로 지도를 하고 있다.

미혼모들은 이 곳에서 출산을 전후해 2개월~1년을 머물다 돌아간다. 양육을 원하는 경우 아이가 1백일이 될 때까지 함께 머물며 거처를 찾을 수 있다. 미혼모 보호시설은 대구 혜림원.광주 인애복지원.충북 청원군 자모원 등 전국 여덟 곳. 지난해 1천6백여명이 이 시설들을 거쳐갔다.

이경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