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위원 칼럼] 방심의 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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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야구대표팀이 지난 19일 투수들의 방심으로 세계 최강 쿠바에 아깝게 졌다.

한국은 6회 무사 1, 2루의 위기에서 선발투수 김수경 선수가 투스트라이크 이후 무심코 버리는 볼을 던지다 2루타를 맞으면서 대량 실점, 순식간에 5-4로 역전당했다.

한국타자라면 치지 않았을 높은 볼이었지만 쿠바선수는 그대로 받아쳐 2루타로 만들어냈다. 힘있는 쿠바타자들을 염두에 두지 않은 방심탓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7회말 박재홍 선수의 홈런으로 '기사회생, '승부의 흐름을 다시 한국쪽으로 돌려 놓았다.

5-5, 누가 이길지 알 수 없는 상황. 이같은 고비에서 세번째 투수 손민한은 쿠바의 첫 타자에게 초구에 직구를 던지다 홈런을 허용, 어렵사리 움켜쥔 승리의 기회를 또다시 날려버리고 말았다.

여간해서는 초구를 때리지 않는 국내타자들을 상대하던 습관대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려다 쿠바선수에게 일격을 당한 것이다.

남자유도 73㎏급 최용신 선수도 방심으로 다잡은 금메달을 놓쳤다. 세계랭킹 4위권인 그는 예선에서 1999년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지미 페드로(미국)와 우승후보 나카무라 겐지(일본)를 잇따라 꺾어 돌풍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준결승에서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되던 브라질의 무명선수를 앝보다 역습 당해 금메달을 앞에 두고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데다 얕본 탓이다.

골프에서는 힘차고 멋진 샷을 날린후 미스샷이 많이 발생한다는 통계가 있다. 마음이 풀어져 집중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골퍼 진 사라센은 "굿샷 이후의 샷을 조심해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우리말 사전에 방심(放心)은 '마음을 다잡지 아니하고 풀어놓아 버림' 이라고 정의돼 있다. 한국선수들의 아쉬운 패배는 모두 마음을 다잡지 않고 풀어 놓은데 원인이 있었다.

방심의 원인은 다양하다. 어려운 고비를 넘긴후나 혹은 상대방을 얕보았을때, 딴 곳에 정신이 팔릴 때 등등. 그러나 방심의 대가는 혹독하다.

일본 여자유도의 간판 다무라 선수는 92, 96년 올림픽에서 잇따라 결승까지 올랐으나 두번 다 세계 1위를 꺾은 후 방심하다 져 8년의 세월을 절치부심해야 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는 강호 북한선수를 꺾은 준결승 이후 더욱 더 마음의 고삐를 쥐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로 고생하다 가까스로 벗어나고 있다는 희망을 가진 지가 엊그제 같은데 또다시 위기가 오고 있다는 진단이다. 고비를 넘었다고 너도 나도 '마음을 풀어 논' 탓이다. 방심의 대가는 스포츠에 견줄 바가 아닐 것이다.

지금이라도 마음의 고삐를 다잡고 다시한번 승부를 벌여나갈 각오를 다져야 하지 않을까.

권오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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