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원 행장 측근 간부가 검사 문건 노조에 넘겨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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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강정원 국민은행장의 최측근 은행 간부가 금융감독원의 사전검사 내용을 기록한 문건을 은행 노조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은행은 이 문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부장급 간부 L씨를 직위해제했다고 17일 밝혔다.

금감원은 다음 달 10일까지 진행되는 국민은행 종합검사에서 문서가 외부로 나가는 과정에 강 행장 등 은행 경영진이 개입했는지를 중점 조사키로 했다.

17일 국민은행과 노조에 따르면 L씨는 지난해 12월 말 노조 간부의 요청으로 검사 내용을 적은 ‘금융감독원 사전검사 수검일보’를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문건은 국민은행 노조에서 일하는 전문위원을 통해 야당 정치인에게 전달된 것으로 은행과 노조 측은 파악하고 있다.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L씨는 2008년 9월 사회협력 담당 부서장으로 전보된 데 이어 지난해 1월 핵심 보직인 전략 담당 부서장으로 발령 났다. 은행에서 전략 담당 부서장은 전반적인 경영상황을 챙기고 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보직으로 은행장의 최측근 인사가 맡는 게 관례다. L씨는 당시 각 부서에서 올라온 금감원 사전검사 내용을 취합한 자료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경영진의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다. 익명을 원한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L씨가 노조에 검사 상황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대외비를 조건으로 문서를 제공했다”며 “문건을 노조에 주는 것에 대해 경영진과 상의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또 익명을 원한 노조 간부 역시 “금감원의 고압적인 사전검사에 노조원들의 불만이 빗발쳐 진상 조사를 하는 차원에서 관련 부서에서 자료를 받았다”며 “전문위원이 이를 입수해 정치인에게 문건을 전달한 경위는 좀 더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진이 모르는 상태에서 노조와 L씨 사이에 이뤄진 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금감원은 국민은행 경영진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또 법률 검토를 통해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금감원 내부에선 경영진을 문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감원은 다음 달 10일까지 실시되는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에 대한 종합검사에서 부당한 업무처리가 발견됐을 때는 은행 관련자를 대상으로 계좌추적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원배·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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