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본 올림픽] 2위 입상 선수서 즐거운 표정 인상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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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기대했던 대로 우리 여자 궁사들은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세 사람이 9발씩 모두 27발을 쏘는 동안 "아, 어떻게 저토록 잘 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을 스무번은 했을 것이다.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올림픽 기록을 세우고,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에서 세계기록을 수립했을 때, 그 감탄은 'YOU BEAUTY!' 라는 큼지막한 탄성으로 변해 경기장의 전광판에 아로새겨졌다.

아름답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아름답다는 말만큼 많은 동의어를 거느린 단어도 흔치 않다.

그것은 선(善)과 덕(德).지혜.정의.희망 등과 함께 사용됐다. 때로 그것은 부드러움.온화함.절제.긍휼과도 그 의미를 나누었다. 아름다움은 인간이 지닌 최상의 단어다.

20일 저녁 무렵, 시드니로부터 뜻밖의 금메달 소식이 들려왔을 때 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둘씩이나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김영호 선수가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펜싱 플뢰레 경기에서였다.

14대 14, 마지막 한 포인트를 남겨둔 긴박한 상황에서도 상대를 향해 대담하게 달려들던 그의 돌파력과, 그의 칼끝이 상대의 가슴을 찌르자 투구를 내던진 채 무릎을 꿇으며 포효하듯 두 팔을 번쩍 치켜들던 그의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다.

얼마 뒤 시상식장에서 나는 또 한 사람의 아름다운 얼굴과 마주쳤다. 그는 바로 김영호에게 진 은메달리스트 랄프 비스도르프(독일)였다.

이름이 호명되자 큰 키의 비스도르프는 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두 팔을 치켜들고는 시상대에 올랐다. 그러고는 김영호를 포옹했다.

거기까지는 시상식에서 펼쳐지는 일반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비스도르프가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워 김영호에게 내보이며 찬사를 보낸 것은 여느 시상식장에서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패자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넘어, 스포츠에는 진정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사실을 또 한번 절감했다.

2등을 낙오자로 취급하는 것은 군국주의적 발상이다. 군대갔다 온 남자면 2등이 얼마나 '찬밥' 인지를 알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가 정책적으로 운동선수를 지원.육성하는 이른바 '엘리트 스포츠' 는 2등을 꼴찌와 동격으로 취급하는 저열한 정책이다.

스포츠는 궁극적으로 '사회체육' 으로 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2등과 만날 수 없다.

한국 여궁사들이 1등 시상대에 오르며 즐거워하는 모습만큼 2등을 한 우크라이나 선수들과 3등을 한 독일 선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도 역시 아름다웠다.

메달은 자신들이 기울인 노력의 '덤' 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스포츠맨, 그들은 아름답다.

하창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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