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진한 메세지 '나는 마음으로…' 관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보통 때 아무렇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들이 이제 차츰 희미해졌다. 그러면서 주변 이미지에 탐닉하게 되었다. 더 흐릿해지기 전에 잘 보고 기억해두려고… 사랑하는 이들-아내.자식들.손주들.친구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눈이 차츰 침침해지고 끝내는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면 당신은 삶과 세계를 어떻게 얻고 꾸려나갈 것인가.

아니면 시력 상실과 함께 세상도 어둠 속으로 집어넣고 말 것인가.

이 책은 저자가 황반 변성증이라는 눈병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눈과 '보는 것' 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사환으로 미국 '타임' 지에 입사해 기자를 거쳐 편집장까지, 평생 쓰고 읽는 일에 종사해온 저자에게 시력상실은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이 책은 그러나 잃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얻는 것도 있다는 신념의 산물이다.

세상이 잘 보일 때는 눈에 대해 의식조차 못했던 저자는 시력을 상실해가며 눈에 대한 신화적.문화적.생물학적 탐구에 들어간다.

아주 옛날부터 인간은 하늘에 있는 눈을 상상했다. 눈은 여러 고대문명을 거치면서 태양처럼 하늘에서 맴돌았다. 눈은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아는 신들의 도구로 여겨졌다.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눈을, 전지전능해서 모든 것을 보지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야훼의 상징으로 간주했다.

힌두교에는 하늘의 눈으로 알려진 신이 있고, 모든 것을 보는 천개의 눈을 가진 신이 있다.

신화나 종교에서 눈은 단순히 성스런 감시자의 매개물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통찰력의 핵으로 간주됐다.

이것은 내면의 눈, 제3의 눈, 마음의 눈 같은 다양한 용어로 변용돼 내려오고 있다.

한편 과학도 끊임없이 눈의 신비를 벗기고 있다. 눈은 살갗에 붙은 감광성 세포에서 진화됐다. 인간도 성장하면서 '보는 것' 에 대한 진화가 일어난다.

갓난 아기의 눈은 조율되지 않아 20㎝ 안팎의 사물만 분간하며 4살이 돼야 겨우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런 탐구를 통해 저자는 인간에게 있어 눈은 단순히 세상을 거울 처럼 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하면서 바라보는 것임을 깨우친다.

같은 풍경을 보고 그린 그림들이 각기 다르듯이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상상으로 세계를 본다는 것이다.

이같은 깨달음에 이른 저자는 마음의 눈으로서 자신의 지나온 삶과 감상한 예술품을 찬찬히 반추한다.

향기나 멜로디, 손에 잡히는 감촉 같은 것은 눈 앞에서 이미지가 사라진 후에도 오랫동안 마음 속에 남아있게 도와준다며 저자가 반추한 삶과 풍광은 깊고 아름다우며 또 삶에 대한 통찰에 다가가고 있다.

안보이는 눈에 잡힌 이미지들이 한없이 명징하게 빛나며 번역서이지만 문체의 향기까지 느껴지게 한다.

고급스런 정보와 명상, 빼어난 문장으로 읽히면서 "없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남아 있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겨라. 그러면 더 큰 보상을 얻으리라" 는 삶에 대한 통찰의 메시지를 온전치 못한 우리 모두에게 저자는 전하고 있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