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통령도 갈 곳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대통령도 갈 곳을 잃었다. 대통령궁뿐 아니라 사저(私邸)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지진이 강타한 아이티 이야기다. 강진으로 초토화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포르토프랭스에서 이웃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탈출한 강돈일(사진) DECCO 상무를 14일 새벽(현지시간) 수도 산토도밍고 델타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땅이 마치 파도가 치듯 솟아오르며 다가왔다”고 회상했다. DECCO는 아이티에서 발전소 건설공사를 하고 있는 현지 독립법인 기업이다. 포르토프랭스 외곽에 짓고 있는 발전소 건설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강 상무는 지난해 12월 28일 현장에 투입됐다가 지진을 겪은 뒤 16명의 동료 및 현지 직원과 함께 5대의 차량으로 48시간 만에 아이티에서 빠져 나왔다. 그의 말을 옮긴다.

12일 오후 4시20분쯤 나는 우리 건설현장에 부속품을 대는 프랑스회사에 자료를 받으러 갔다. 프랑스 파트너와 한참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책상이 내 눈높이만큼 튀어 올랐다. 주위에 있던 책장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사무실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 건물 담이 무너지며 우리가 있던 사무실을 덮쳤다. 처음엔 폭탄이 터진 줄 알았다.

13일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사람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서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망자가 10만 명을 웃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AP=연합뉴스]


놀라서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 나와 보니 바깥은 아비규환이었다. 땅이 파도처럼 치고 올라왔다. 벽이란 벽은 다 무너졌고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현장이 걱정돼 급히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쪽 사정은 더 열악했다. 여진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이 절규하는 소리가 마치 철새 떼가 지나가며 우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했다. 현장에서 보이는 계곡 하나는 아예 양쪽이 매몰돼 평지가 됐다고 했다. 아이티에선 부유층일수록 산 정상에 가깝게 살고 서민은 아랫동네에 거주한다. 이번 지진으로 산중턱 이상 부유층 지역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피해를 봤다. 급히 차를 몰아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진도 지진이었지만 폭동이 일어날 우려가 컸다. 폭동이 나면 외국인이 가장 쉬운 표적이 된다. 직원과 가족을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는 게 급했다. 궁리 끝에 포르토프랭스 외곽 산중턱에 있는 직원 집에 모이기로 했다.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했고 지진 피해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밤 11~12시쯤 17명이 모였다. DECCO 직원도 있었고, 현지 한국회사 ESD와 현대중공업, 한국전력 직원도 섞여 있었다. 일단 피신은 했으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새벽 3시까지 의논을 했다. 일단 이튿날 동원 가능한 차량을 수배해 함께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새벽에 잠시 침대에 누웠는데 수시로 몸이 흔들렸다. 너무 무서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각자 흩어져 필요한 일을 보고 오후 1시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차량확보팀은 한 시간여 시내를 헤맨 끝에 가까스로 기름을 채워 왔다. 나는 사무실로 가서 인터넷 전화로 회사와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모두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렸다. 모든 통신이 끊겼으나 다행히 내 숙소에선 인터넷이 연결돼 있었다. 지진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카르푸 발전소에 있던 우리 직원은 차량을 움직일 수 없어 1인당 150달러씩 주고 택배 오토바이를 타고 빠져나왔다.

오후 1시 반 17명이 현지 직원 차량을 포함해 5대에 나눠 타고 국경으로 향했다. 지리를 잘 아는 현지 직원이 맨 앞에서 운전을 해줬다. 가다가 다리가 끊겼으면 우회하고 길이 막히면 샛길로 돌아가길 반복했다. 집이라고 생긴 건 죄다 주저앉은 게 보였다. 시내를 통과하면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유엔군 사령부도 봤다. 우리 일행 중 한 명은 오는 길에 병원 앞을 지났는데 시체를 수백여m 늘어놓고 있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소형 트럭 위로 하얀 천에 덮인 희생자의 발이 보였다. 길거리 곳곳에 시체가 널려 있었지만 치울 엄두를 못 냈다.

보통 우리 현장에서 국경까지는 한 시간이면 가는데 두 시간 반이 걸렸다. 그나마 국경으로 가는 도로는 파손이 상대적으로 덜해 차로 움직이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차창 밖 풍경은 생지옥이었다. 2008년 허리케인이 할퀴고 간 곳을 지진이 다시 한번 짓이겼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멀리 국경이 보였다. 그제야 살았구나 싶었다. 국경은 그때까지만 해도 큰 혼란은 없었다. 우리를 태워다 준 아이티 차량과 현지 직원은 국경에서 돌아갔다. 운전을 맡아준 현지 직원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도미니카공화국 국경 너머엔 발전소 공사를 맡고 있는 현지 ESD 최상민 사장이 버스 한 대와 SUV 한 대를 몰고 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을 걸어서 넘은 뒤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오는 동안 폭도의 공격과 교통사고 우려로 너무나 긴장한 탓이었는지 다리가 풀렸다.

아이티 현장은 현지 경비원에게 맡기고 왔다.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은 데다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잘 지켜주리라 믿는다. 다만 카르푸 발전소 쪽엔 기름 저장 탱크가 있어 약탈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산토도밍고(도미니카공화국)=정경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