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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 수출, 패러다임 전환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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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의 구매품 1순위는 한국 막걸리다. 지난해 국산 막걸리는 일본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수출액이 전년 대비 37% 이상 급증했다. 일본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채소 가운데 하나인 파프리카는 한국산이 9년째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신선도와 안전성을 앞세운 국산 파프리카가 일본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와 중국이 수교할 당시만 해도 저가의 중국 농산물 때문에 우리 농업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우리나라의 농식품 수출 대상 2위국으로서, 김치나 유자차 등 한국식품 코너를 별도로 설치한 대형마트를 중국 전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등 세계적인 시장 개방 흐름에 따라 국가 간 농식품 무역 규모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고, 내수시장에만 치중해서는 개별 농가는 물론 식품업계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농식품 수출’이라고 하면 김치·고추장 등 일부 전통식품을 해외 교포들에게 내보내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적지 않다.

농식품 수출이 교포 위주의 소규모 단품 수출 방식을 답습한다면 금세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현지인을 공략하기 위한 대량·패키지 수출 방식으로 농식품 수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현지인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대형 유통업체에 한국 농식품을 입점시키는 직수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한국 농식품은 현재 미국·중국·유럽 등 7개 주요국 16개 대형 유통업체와의 판매 확대 협약을 통해 5000여 개가 넘는 대형 매장을 확보하고 입점 품목 수도 두 배 이상 늘려가고 있다.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현지 소비자들의 특성과 기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맞춤형 수출 유망 상품을 발굴하는 과정도 이뤄져야 한다. 불황으로 지갑이 얇아진 일본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과실 막걸리, 소득 수준이 향상된 중국인들을 겨냥한 인삼·알로에 등 건강음료는 이러한 전략 수출상품의 좋은 예다.

또한 취약한 국내 생산구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미국의 돌(Dole)과 선키스트, 뉴질랜드의 제스프리처럼 품목별로 규모화·조직화된 수출기업을 육성해 세계시장에서 교섭력을 높여야 한다. 국내에도 최근 팽이버섯 수출량의 90%를 차지하는 ‘한국버섯수출사업단’이 출범하는 등 세계적인 수출 전문 기업의 기반이 조성되고 있다.

지난해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우리 농식품 수출은 10% 가까운 성장을 기록했다. 새로운 전략적 패러다임으로 세계 시장에 당당히 나선다면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농식품 수출 강대국으로 위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윤장배 농수산물유통공사(aT)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