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지구 반대편에서 본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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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브라질 상파울루 교민 강연회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았다. 장사꾼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신기하게도 지도를 펼쳐들고 온 장사꾼도 있었다. 무심코 세계지도를 보다 말고 난 깜짝 놀랐다.

"한국이 없잖아!" "한국□ 여기 있잖아요. " 그가 가리키는 데를 보니 오른편 상단 끝자락에 겨우 매달려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우리가 보아온 세계지도엔 언제나 한국이 중심이 아니던가.

태평양 정상에 턱 버티고 서서 좌우로 오대양 육대주를 거느리는 세계의 중심, 한국이다. 비록 땅덩이가 적긴 하지만.

그게 어쩌다 이렇게 초라한 변방국으로 밀려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어딘가 잘못된 지도다.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나는 그 지도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대서양이 중심이었다. 그러자니 아프리카 대륙이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응, 그랬군. 이런 지도도 있구나. 그제서야 다시 보니 한국과 브라질은 정말 지구의 끝에서 끝이었다. 장장 36시간을 날아온 까닭이 수긍이 간다. 지도가 바뀌니 세상이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진다.

"그 지도 한 장 주시오. 그리고 브라질은 땅덩이도 크니까 좀 싸게 하시오. " "무슨 말씀, 안됩니다.

땅덩이만 크면 뭘 합니까? 한국처럼 작아도 머리가 좋아야 합니다. 내 몰골을 보시오... " 더듬거리며 하는 영어에 엄살 떠는 모습이 참 해학적이다. 그의 너스레에 에누리도 못했다.

내 손자 방엔 우리가 만든 것과 남미의 세계지도가 나란히 걸려 있다. 녀석이 자라 그 뜻을 터득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우리 생각에 온통 세상은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가 세계의 중심이요 축이다.

따라서 큰 일, 작은 일 우리 일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 민족이 가장 위대하고 우리 문화가 가장 우수하다.

우린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다. 우리가 최고다. 외국인을 지칭할 때 '놈' 자를 붙이는 것도 그래서다.

민족 자긍심이 높은 것까진 좋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사고에 빠져선 안된다. 남미 지도를 보면서 놀란 자체가 문제다.

세상을 두루 넓게 볼 수 있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구촌 시대의 생존 전략이다.

문화엔 우열이 없다. 좋고 나쁘고도 없다. 그저 우리와는 다르고 같음이 있을 뿐이다. 어떤 문화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수 있다면 문화우월주의에 도취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다.

브라질의 아마존 정글엔 지금도 식인종이 살고 있다. 우린 이들을 야만 중에 야만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한 인류학자의 현지보고에 의하면 식인 풍습만큼 인간적인 것도 없다고 한다.

극심한 가뭄, 천재지변으로 부족이 아사 위기에 직면할 때 자기 몸을 제물로 바쳐 부족을 구하려는 살신성인의 거룩한 희생자가 나타난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고귀한 인간애가 달리 있을까. 식인종이라고 길을 가는 백인 여자를 잡아먹는 게 아니다.

이건 바깥 사람들의 무지가 만들어낸 우화일 뿐이다. 이런 이야길 식인종이 듣는다면 하늘을 보고 웃을 것이다. 희생이라고는 모르는, 약아빠진 이기주의자들에게 던질 그들의 싸늘한 웃음이 두렵지 않은가?

이것이 문화의 본질이요 속성이다. 식인풍습만이 아니다. 요즈음 TV에선 진귀한 나라들의 진귀한 풍습을 소개하는 프로가 많다.

사람들은 배를 잡고 웃는다. 저게 사람인가□ 심지어 경멸하고 무시한다.

우리는 저런 야만적인 문화권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우쭐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명심하라. 우리것에 도취된 우리 모습을 보고 남들은 뭐랄 것인지도 헤아려봐야 한다. 이제 우린 무역 물동량이 세계 10위, 온 지구촌을 상대로 장사하고 있다.

남의 입장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 폐쇄적인 국수주의, 이것만은 경계할 일이다.

지구의 반대편이어서일까. 우리와는 반대가 많다. 물은 돈을 줘야 하지만 커피는 공짜인 식당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시형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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