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로 역사를 읽는다』

중앙일보

입력


우리나라 지도를 보면서“만약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드넓은 만주 지역을 지배했던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를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영토가 한반도에 그치게 된 것이 아쉽게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도 여러 나라로 나누어져 있기도 했고 나라 이름이 몇 차례 바뀌기도 했으니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세계 지도의 모양은 어떻게 형성됐을까?

세계 지도 위에 표시된 각 나라의 영토는 국경으로 나눠져 있다. 이러한 국경의 대부분은 오랜 기간에 걸친 각 나라 사이의 전쟁을 통해 형성됐다. 세계 역사에 등장했던 강력한 나라들이 벌인 대규모 정복 전쟁으로 인해 세계 지도의 모습은 오늘날까지 여러 번 변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 제국, 중국의 진·한 제국, 몽골 제국, 대영 제국 등이다. 한때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나라들은 당대에는 세계 지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지배했다. 또한 이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알렉산더 대왕이나 나폴레옹 같은 정복자들이 역사에 등장하기도 했다.

시대와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지도를 살펴보면 역사적 사건들이 어떠한 인과 관계로 엮여 있는지 알 수 있다. 세계 지도로 역사를 읽는다 2(타케미츠 마코토 지음, 황금가지 펴냄)는 이처럼 그동안 지도를 변화시켜 왔던 국제적 분쟁과 그 배경을 다루고 있어 세계사를 재미있게 공부하고 앞으로의 세계정세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서로 다른 문명이 새롭게 만나고 충돌하면서 역사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그러한 계기를 마련한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 콜럼버스를 꼽을 수 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 아메리카에 도달하면서 세계사는 크게 변했다. 13~14세기 유라시아 대륙은 몽골 대제국의 세력 아래 놓여 있었다. 15세기부터는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유럽인이 진출하기 시작했다. 콜럼버스 시대 스페인의 세력권은 서인도 제도와 남미 북단, 중미 남부에 불과했지만 머지않아 아메리카 전역으로 유럽인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신대륙으로부터 대량의 은이 공급됨에 따라 유럽의 경제는 활기를 띠게 된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끊임없이 무역을 확대하고 식민지를 확대했다. 이 때문에 선단을 이용해 원정지에 군대를 보내는 형태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러한 대항해 시대의 서막을 연 것이 콜럼버스였다. “서쪽 항로를 통해 황금과 향신료가 풍부한 아시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콜럼버스의 믿음은 당시에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아무도 그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이라는 모험을 좋아하는 후원자를 얻어서 콜럼버스는 항해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선원들도 “서쪽으로 계속 가면 거대한 폭포로 떨어진다”며 반발했지만 콜럼버스는 선원들을 참을성 있게 설득하면서 두 달여의 항해 끝에 바하마 제도 가운데 하나인 산살바도르 섬에 상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신대륙 사람들을 무력으로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특산품만을 갖고 스페인으로 돌아온 콜럼버스는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다가 불우하게 죽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유지를 이어받은 모험가들은 남북 아메리카를 탐험하면서 금은을 비롯한 다양한 아메리카 원산물을 유럽으로 가져왔다. 모험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침략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세계 지도는 또 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