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도시빈민'은 구조의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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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시민의 신문사와 인사이트리서치가 정치.경제학자와 시민운동가 1백50명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의 정부의 전반기에 관한 의견을 물어 보았다.

이 글에서 우리 사회의 소득불균형에 관한 것만을 인용하면 학자.시민운동가들 중 84.7%가 현정부 들어 우리 사회의 소득불균형이 심화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집권 후반기에도 지금보다 더 악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6.7%였다.

소득불균형이 벌어지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엔이나 세계은행의 자료에서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은 지난 40년 동안 국가간의 소득불균형도 심화됐고 대부분 나라에서 국내 빈부격차도 더 심해졌다.

'소득불균형' 이란 '말이 추상적이고 '여러 가지 구체적인 상황을 통계적으로 요약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불균형이 한편으로는 엄청난 불로소득 때문에, 또 한편으론 결손가족.실직.단독세대노인 문제와 일용직이나 혹독한 직장 상황과 같은 불안전한 고용 등에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귀화한 필자는 서울 도심지에서 가까운 저소득층 지역에 살고 있다. 이 지역에 '불쌍하게' 보이는 빈곤층은 조금밖에 없다.

이 지역은 재산도 없고 교육도 못 받은 사람들이 비공식적 방법으로 또는 임시직으로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기회가 많다고 해서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이들의 저소득과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잘 생기고 건강한 30대 남자 친구가 있는데 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함께 하는 일에 잘 참여해 왔기 때문에 여러 이웃들이 이 사람을 신뢰한다.

그는 부지런하고 판단력이 좋아서 소규모의 사업을 한다면 성공할 것 같다. 그러나 재산이 없는 데다 형제들의 빚과 부모의 의료비 때문에 미래가 어둡다.

밝은 정신으로 살고 있었던 이 사람이 이제 마음 속에 항상 걱정을 안고 살게 되었다.

임대료에 시달리는 가족도 많다. 최소한의 시설만 갖춘 집에서 살려고해도 적어도 1천만원의 보증금에다 14만원의 월세와 7만원 내지 15만원의 관리비를 내야 한다.

90만원 정도의 소득이 있는 한 가족이 30만원의 주거비(월세.관리비, 대출금의 이자 및 원금 납부)를 내야 한다. 자녀들의 교육비를 마련하는 것은 언제나 걱정이 되고 대학을 간다는 것은 기적이다.

이 지역에서 맞벌이 부부의 아이나 결손가정의 아이를 위해 운영 중인 공부방의 실무책임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언젠가 중1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6년 뒤에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니□' 하고 미래의 꿈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부모가 모두 실직상태이고 그나마 아버지는 일용직(노가다)으로 이따금 일을 나가는 가정의 한 아이의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선생님, 내일 일도 제대로 모르는데 6년 뒤를 어떻게 알아요?' 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조그마한 돈만 생겨도 오락실에 가기 일쑤였다.

실상 이런 문제는 가난의 대물림, 빈곤의 악순환이 단지 경제수준만이 아니라 성장기 아동과 청소년들의 사고 방식 및 행동 양식마저 규제하는 삶의 조건이 된다는 데 생각이 미쳐 더욱 가슴이 아팠다. "

소득불균형이 매년 늘어나는 현상을 지켜보고 그 의미를 분석하노라면 참으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매년 여러가지 사건을 당하는 내 이웃들 중에 상대적 빈곤의 부끄러움과 분노를 겪고 있는 사람이 갈수록 많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고 벌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빈곤의 원인을 결코 게으름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소득불균형이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것은 분명히 구조적인 현상이며,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결코 저소득층이 아니다!)들이 만드는 구조의 부작용이다.

빈곤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을 경우에도 그 잘못이 위의 통계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매개체일 뿐이다.

정부와 사회는 소득불균형의 증가가 환경오염 등 다른 문제들에 못지 않게 세계적 차원의 위기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른바 '도시빈민' 등 저소득층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는 사회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박문수 신부 <아시아거주권연합 한국위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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