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육부 장관 임기 보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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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조령모개(朝令暮改)나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대명사가 된 지는 오래다. 이는 일관성 있는 정책이 추진되지 못하고 변경이 잦은 데다 새로운 정책이 제시된다고 해도 교육에 대한 국민의 강한 요구와 필요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육정책과 제도가 자주 바뀌는 것은 교육개혁의 추진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일 수 있지만 장관이 자주 교체되는 데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장관이 바뀌면 나름대로 교육적 소신과 철학을 갖고 무언가 가시적인 업적을 남기려는 욕심과 부담을 느끼면서 이것저것 개선하고 바꾸어 보려고 한다.

그러려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로 새로운 진용을 짜야 하고, 따라서 관료들은 연쇄이동을 하게 됨으로써 교육행정 업무를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힘들다. 담당업무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과 기술을 축적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교육부장관이 자주 교체된 것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더욱 심했다. 걸핏하면 장관이 바뀌었고, 심지어 6~7개월 재임하는 기간 중 업무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물러난 장관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지 2년반 사이에 벌써 교육부장관이 다섯번째 바뀌었다. 이렇게 된 것은 여러가지 정치적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적 식견과 경험을 갖춘 인사를 등용하기보다 학연.지연.정당관계 등과 같은 엽관주의(獵官主義)에 바탕을 둔 인사 방식에서 비롯된 바도 크다고 본다.

여기에는 전문가보다 오히려 비전문가가 교육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일각의 그릇된 인식도 한몫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추진력이 있고 줏대가 세다' 고 해서 교육 운용이나 교육 개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 장관이 돼 개혁을 한답시고 교육계를 흐트러 놓거나 설익은 정책 발표, 투박한 정책 집행으로 교육현장의 반발과 갈등을 유발한 경우가 허다했다.

교직사회가 동요하고 교원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교실붕괴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 총리와 함께 취임한 데이비드 블런킷이 아직도 교육고용부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후 임명된 리처드 릴리 교육부장관이 7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교육부장관이 신망받는 인사이고 개혁 지향성이 있을 뿐 아니라 그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육을 정권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교육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을 중시하는 통치권자의 인사철학과 국민의 기대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흔히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이는 교육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이 구상되고 실천돼야 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특수성을 감안할 때 교육정책이나 제도가 신중하고도 일관성 있게 결정되고 집행되지 않을 경우 그 피해는 학생과 학부모, 나아가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국가적 손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교육 운영과 인적 자원 개발을 책임지는 교육 수장인 교육부장관은 무엇보다 새로운 교육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면서 교육의 질 향상에 초점을 두고 인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하는 정책을 안정적이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도덕성과 함께 전문성은 물론 행정력과 정치력을 충분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사를 일단 임명하면 교육에 대한 그의 비전과 소신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재임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겠지만 최소한 2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해줘야 교육적 청사진과 구상을 소신껏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부장관의 인선에 정치적 고려 보다는 교육적 고려가 앞서야 함은 물론이다.

서연화 <홍익대 교육학과.한국교원교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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