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걸어온 길] 下. 나치 정치선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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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 남.북한이 동시입장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는 것 같다.

우리측은 쌍수로 환영하는데 북한측의 대답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남.북한 동시입장을 권했던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도 이같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6일 "동시입장이 비관적인 상태" 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올림픽위원회(KOC)는 개막식(15일) 전까지 대답을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무슨 이유로 대답을 미루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에 비해 선수단 규모가 적어 득될 게 없다는 등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따지고 보면 남북한 동시입장은 일종의 정치적인 프로파간다다. 우리에게는 이산가족의 만남만큼이나 감격적이지만 타국인들에겐 '정치적 이벤트' 다.

사실 올림픽은 초창기부터 정치적인 색채가 강했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늘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1896년과 1906년 그리스의 위정자들이 그랬고 1908년 영국왕실이나 12년 스웨덴 구스타프왕, 러시아 황제 등이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지배계급은 올림픽 유치로 국내의 골치아픈 정치.경제문제들을 호도하려 했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도 33년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올림픽유치단 대표들을 불러 36년 올림픽유치를 강력하게 촉구했다.

히틀러는 올림픽이야말로 나치당의 힘과 이념을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마당이라고 생각, 열정적으로 유치에 나섰다.

나치의 불순한 의도를 간파한 미국의 어네스트 리 양케 위원 등이 앞장서 배를린 올림픽 반려와 보이콧을 주장했지만 국제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결국 나치에게 정치선동의 마당을 제공하게 되며 양케 위원은 이 일로 IOC위원직까지 박탈 당한다.

이같은 오욕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에서의 정치문제는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 때부터 올림픽에서 정치적 행위는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육상 남자 2백m 시상식에서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높이 쳐들며 흑인의 인권을 시위하는 정치행위를 벌였다.

IOC는 즉각 두 선수의 자격을 정지시켰고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이들을 선수촌에서 추방했다. IOC는 단죄 이유로 '국가가 아닌 특정 정치집단(흑인)의 정치적 주장은 용납되지 않는다' 고 발표했다.

72년 9월 5일 뮌헨의 올림픽 빌리지를 습격,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을 학살한 검은 9월단의 행위도 용납할 수 없는 정치행위로 볼 수 있다.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오염시킨 가장 극적인 예는 아마도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일 것이다.

80년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 모스크바올림픽 보이콧에 앞장섰다.

이 역시 이유는 정당했으나 방법이 현명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차라리 미국선수들에게 아프가니스탄 기를 들고 입장하게 하는 것보다 못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올림픽은 2회 연속 공산권 국가와 자유진영 국가가 각각 반쪽대회를 여는 최악의 사태로 발전했던 사실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새롭다.

온 세계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은 유엔과 올림픽뿐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올림픽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또 항상 정치의 영향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21세기를 맞는 올림픽운동은 이같은 오욕의 역사를 털고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이다. IOC의 책무도 여기에 있다.

권오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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