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태풍·까치떼…과수농민 겹주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과수농가들이 추석대목을 앞두고 출하는 커녕 낙과를 매립하느라 지쳐가고 있다.

게다가 태풍을 견뎌낸 과일에는 까치떼가 덤벼들고 있고, 정부가 피해구제책으로 내놓은 낙과수매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며 한숨이다.

충청.호남지역 과수농가 현장을 점검했다.

"기가 맥힌당께요. 배나무에 약 주기도 싫고 풀 뽑기도 싫고 이제는 일허는 것이 지긋지긋허요. "

4일 전남 나주시 노안면 유곡리에서 만난 농민 임경택(林瓊澤.72)씨는 배나무를 바라볼수록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태풍 피해로 3백 그루에서 떨어져 과수원 여기저기서 나뒹구는 배를 줍느라 울화통이 터진다는 것이다.

태풍 '프라피룬' 이 몰고 온 초속 30m의 강풍은 나주지역 배 과수원은 그야말로 초토화시켰다.

국내 배 출하량의 70%를 생산하는 나주지역 배과수원(5천1백73㏊)에서 올해 배 수확예상량 6만t의 30%인 1만8천t이 낙과하는 피해를 입었다.

"엄청나게 떨어져 부렀지라. 추석을 앞두고 한창 배를 따야할 시기인디 떨어진 배를 파묻고 버리고 하느라 오히려 일손이 부족할 정도요. "

나주시 부덕동에서 2천평 과수원을 가꾸는 이송철(李松喆.66)씨는 지난해 8t 트럭 2대분을 출하해 3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올해는 50%가량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李씨는 농협에서 빌린 영농자금과 외상으로 구입한 농약대금을 어떻게 갚아야할 지 막막한 심정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기대하는 '농작물 재해 보상' 도 기대를 갖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현재 정부는 자연재해대책법과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농가단위 피해율을 산출해 30%이상 작물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해 생계비.학자금을 지원하고 영농자금을 융자해주고 있다.

그러나 타 작물과 병행 농사를 지을 경우 두 작물의 전체 재배면적에서 피해면적이 30%를 초과하지 않으면 재해 보상을 받지못한다.

벼 농사를 3천평 짓는 林씨는 지난해에도 태풍으로 배 과수원 2천평 중 1천4백평에서 낙과 피해를 입었으나 2개 작물을 합산한 전체 재배면적 5천평의 28%에 그쳐 전혀 보상을 받지못했다.

농민들이 더욱 한심해하는 것은 당국이 과즙 등 가공용으로 '떨어진 배' 를 사준다며 나주시에 배정한 수매량이다.

나주시 원예협동조합 관계자는 "태풍으로 떨어진 배라도 웬만큼 익어 과즙용으로는 쓸 수 있는데도 나주시에 배정된 수매량은 30t에 불과하다" 고 밝혔다.

비교적 규모가 큰 과수원을 가꾸는 1개 농가의 전체 낙과 피해량에 불과한 수준이다.

농민들은 또 낙과 배의 수매 기준도 ▶당도 11도이상 ▶무게 1백50g이상 ▶상처 크기는 5백원짜리 동전크기 이하 등으로 까다로워 전혀 '현실성없는 지원책' 라며 분노하고 있다.

나주시 금천 석전리 김만섭(金萬燮.71)씨는 "버려진 배가 너무 아까와 즙을 내려고 30박스를 공장에 맡기고 왔다" 며 "농협 빚을 어떻게 갚을 지 걱정이다" 며 한숨지었다.

나주지역 배 재배 농민들은 이번 태풍피해로 입은 손실액이 최하급 상품의 ㎏당 배 가격으로 산출하더라도 1백8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나주=구두훈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