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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갈색폭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고향인 네덜란드 누에넨 시절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은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는 어두운 톤으로 농부들의 고단한 삶을 그리고 있다.

'감자 먹는 사람들' 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파리를 거쳐 좀 더 밝은 태양 아래서 사물을 보기 위해 찾은 남프랑스 아를에서 그의 작품은 강렬한 원색으로 바뀐다.

노란색이 주조를 이루는 '해바라기' 연작이 그렇다. 다시 파리 인근 오베르에서 그린 말년의 작품들은 옅으면서 산뜻한 색조로 바뀐다.

불우한 천재 고흐를 한마디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이처럼 빛의 강도에 따라 그림의 색상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고흐미술관에 가면 이같은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파랗다는 지중해의 하늘, 그리고 거기서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부신 태양은 고흐가 아니라도 누구나 색에 대해 일가견을 갖게 하는가 보다.

유럽 사람들의 색채감각은 남다르다. 우리로선 감히 엄두도 못낼 원색 의상을 자연스레 걸치고 다닌다.

그래도 미끈한 키에 노란 머리와 파란 눈을 가져서인지 잘 어울린다. 오트 쿠튀르(맞춤복)와 프레타 포르테(기성복)쇼로 대변되는 파리 패션이나 알타 모다(맞춤복).돈나(여성복).우오모(남성복) 컬렉션의 밀라노 패션이 세계 패션을 이끄는 것은 이들의 색채 감각과 무관치 않다.

이탈리아나 프랑스보다 일조량이 떨어져 색채 감각이 이들에 다소 못미치는 독일인들도 정치적 색채 감각은 뛰어나다.

'정치 스펙트럼' 으로 부르는 이들의 정치색 분류는 우리의 상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민당 같은 보수.우파는 검정, 사민당이나 노조 같은 진보.좌파는 빨강, 자유주의자들은 노랑이다.

1980년대 들어 환경보호주의자들이 만든 녹색당은 말 그대로 녹색이다. 따라서 '적녹연정' 은 현 사민.녹색당 연정이며, '흑황연정' 은 헬무트 콜 총리 시절의 기민.기사당과 자민당의 연정을 가리킨다.

자민당의 원로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외무장관은 TV에 나올 때 당색인 노란 스웨터를 즐겨 입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갈색이 등장한다. 극우파를 가리키는 색으로 나치의 군복색에서 유래했다.

요즘 독일 언론에 '갈색 폭력' 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외국인에 대한 극우파들의 공격을 뜻한다.

정치적 색맹에다 지독한 근시인 이들이 갈색의 의미나 알았으면 좋겠다. 갈색은 원래 안정.친근.믿음을 뜻하는 색이라고 한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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