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금은 부처의 쌈짓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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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획예산처가 어제 발표한 '62개 기금의 운용실태 및 평가결과' 에 탄식을 금할 수 없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까놓고 보니 기금 조성.배분의 비효율성이나 운용 주체들의 비전문성.무책임함은 충격적이다.

게다가 올 예산의 두 배를 웃도는 1백97조원 규모의 기금들이 지난 40여년간 한번도 종합평가를 받지 않았다니 감독기관들은 무얼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뒤늦게나마 예산처가 정부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용기를 보인 만큼 이를 계기로 기금의 조성.운용을 대폭 재정비해야 한다.

지금까지 기금 중 상당수는 행정부 각 부처의 '쌈지' 노릇을 해 온 게 사실이다. 특히 현재 78조원 규모인 기타 기금은 아예 국회보고조차 필요없을 정도로 운용이 '자유' 로워 각 부처 사이에는 '챙겨놓고 보자' 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 결과 조성한 돈을 한푼도 안쓰고 은행에 넣어두는가 하면 본업은 뒷전이고 호텔에 투자해 손해를 보거나 취미교실이 주사업이 되는 등의 파행이 빚어진 것이다.

수백억, 수천억원의 국민 돈을 굴리면서 전문인력이 없는 것도 문제인데, 아예 수익률 목표 등 명문화된 자산운용정책조차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니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봤으면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

기금도 결국 국민 부담이며 나라 살림살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차제에 전면적인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선 각종 기금의 기능과 효율성을 재점검해 필요없는 것은 없애거나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기금 사업의 의사결정 및 운용 과정의 투명성 제고는 더욱 시급한 과제다. 투자 성과에 대해서도 엄격한 평가가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전문 인력을 과감히 도입하고 자문을 받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특히 내년부터 예금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금융상품에도 수십조원이 들어 있다니 피해를 보지 않을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각 부처도 부처이기주의를 버리고 필요하면 떳떳하게 국회 동의를 얻는 예산 사업으로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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