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미 깃든 코미디 만들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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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물론 제가 잘 만들어서죠."

만드는 영화마다 수백만명씩 관객이 몰리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내 영화를 꼼꼼히 봐준 고마운 분들이죠."

이번 영화에는 실망했다는 사람이 많다고 했더니 코미디가 일상에 스며있는 듯 또 능청이다.

김상진(37.사진) 감독. 코미디 영화계에선 한국의 대표 선수다. 야단법석을 떨어 관객의 정신을 쏙 빼놓는 '주유소 습격 사건'(1999)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해 '신라의 달밤'(2001),'광복절 특사'(2002)로 흥행을 이어갔다. 지난달 17일 개봉한 새 영화 '귀신이 산다' 역시 3일까지 약 2주 만에 240만장 이상의 표가 팔렸다.

"명절 때는 대개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원하잖아요. 개봉 시기를 염두에 뒀고 그런 계산이 맞은 거죠." 추석 연휴 때 '귀신이 산다'가 객석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을 그는 전략의 승리로 설명했다. 한국 최고의 흥행사 강우석 감독의 수제자 다운 답변이다.

"너무 흥행에 신경쓰는 것 아니냐, 관객은 적지만 평가는 좋은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느냐"고 질문하자 딱 잘라서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안 보는 영화를 뭐하러 만듭니까. 내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이 꽉 찬 극장의 구석 자리에 있을 때의 기분이 얼마나 좋은데요." 그는 말을 이어갔다. "어떤 감독이나 사람들이 자기 영화 많이 보기를 바라는 거 아닌가요."

"'귀신이 산다'에 대해 '유치하다''전작보다 재미없다' 등의 비판이 있고 네티즌들이 매기는 평점도 그다지 좋지 않다"고 다시 꼬집자 대답이 다소 길어졌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거죠. '주유소 …'때는 '당신은 사회악이다'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그리고 원래 영화가 잘되려면 '안티'(반대 세력)들이 많아야 해요. 스타일이 달라진 건 분명해요. 캐릭터와 에피소드로 엮어가는 형식에서 이야기 중심으로 바꾸었죠. 변해야한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저 스스로도 불만스러운 구석이 적잖은 영화이기는 하지만 이번 게 좋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대표적인 분이 제 아버지죠."

부친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개인사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영화 만들고 처음으로 이번에 아버지한테 칭찬들었어요. 조감독 시절에 '영화 때려치우고 9급 공무원 시험보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죠. 데뷔작인 '투캅스 3'을 보시고는 '경찰이 다 그런거 아니다'며 언짢은 심기를 드러내시기도 했고요." 그의 부친은 지방경찰청장을 지낸 고위 경찰관이었다. "대학(한양대 연극영화과) 친구들은 제가 감독된 게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던 동기생 설경구가 영화 배우 된거 만큼이나 황당한 일이래요. '시민 케인'같은 교과서에 나오는 영화는 끝까지 못 보고 재미있는 영화만 찾아다녔죠. 연출 공부보다는 연애가 중요했고요."

그는 "1류는 세상을 지키지만 3류는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작품성을 높이 평가받는 작품보다 관객들이 웃고 즐기는 영화를 계속 만들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주유소…'처럼 엉뚱한 캐릭터와 돌발 상황에 의지하는 코미디는 그만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맨땅에 헤딩하기식 코디미에서 이야기 중심의 코미디로 옮겨왔으니 결국에는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같이 인간이 살아 숨쉬는 코미디로 가야죠." 그의 목표는 '고급 3류'라는 말이다.

글=이상언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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