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만 해주시오 사장직도 내놓겠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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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헬멧의 꿈'은 끝내 접어야 하나. 신형 오토바이 헬멧을 개발해 미국 바이어의 주목을 받았던 ㈜라인더스트리 이동선(50.사진). 이 사장은 지난 두달 동안 생산자금 마련을 위해 투자유치에 발벗고 나섰지만 이렇다 할 소득을 얻지 못했다.

회사의 담보 여력이 이미 바닥난데다 불경기로 제조업 투자를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돈을 대려는 투자가가 선뜻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도 용인의 공장에서 세 차례의 투자설명회를 열어 100여명의 투자가와 은행관계자 등을 만났다. 전화 상담까지 합쳐 투자의향을 내비친 사람은 300명을 헤아린다. 이 사장은 "미국 시장에서 최고급 대우를 받는 일본산 헬멧을 따돌릴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마지막 사업화의 관문을 넘지 못해 주저앉는 것 같아 심경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사재를 몽땅 털어 개발한 헬멧이 미처 세계 시장에 얼굴도 못 내밀고 사장되는 것을 그는 걱정했다. 이 사장은 일단 15억원을 끌어들여 헬멧의 양산체제를 갖추고 해외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펼치려 했다. 이를 위해 그는 투자설명회 자리에서 "지분의 절반까지 내놓을 수 있고 대표이사직도 넘길 수 있다"며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투자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향후 3년 후에 이익을 내겠다는 사업계획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일부 투자가는 "제조업에 투자해서 어느 천년에 돈을 뽑겠느냐"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등 당장의 수익을 바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특히 일부 투자가는 1억쯤 줄 테니 회사를 통째로 달라는 억지도 부렸다.

신문 보도를 보고 공장을 찾아온 사람 중에는 투자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도 꽤 있었다. 한 노숙자는 일자리가 없느냐며 졸랐고 공장 인근의 어느 은행지점장은 신용대출 문의에는 들은 척도 안하고 "회사가 잘되면 거래하자"며 발길을 돌렸다. 심지어 군 납품을 추진하자며 로비자금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장은 "대부분의 투자가들은 제조업 경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투자를 한 후 회사 경영도 같이 할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투자유치에는 일단 실패했지만 그의 수출 의욕은 꺾이지 않았다. 내년초 미국에서 열리는 모터사이클딜러박람회에 출품 할 헬멧을 다듬고 최근에는 바이어용 홍보책자를 만들고 있다. 그는 "해외 바이어들은 물건을 보내주면 얼마든지 팔겠다는데 정작 물건을 못 만드는 제조업 사장의 심경을 누가 알아주겠느냐"며 발을 굴렀다.

◆라인더스트리=1993년 오토바이 헬멧 개발과 제조를 위해 설립됐다. 1997년 제품 출시 1년 만에 100만달러어치의 헬멧을 수출하는 등 출발은 순탄했으나 외환위기 무렵 부도를 냈다. 지난해 서울대와 공동으로 공기소통방식과 소재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헬멧 제품을 개발했다. 이 제품은 미국의 오토바이안전규격(SNELL)테스트에서 합격판정을 받았다. 용인의 임대공장에서 수공업형태로 만든 수출용 샘플은 잔뜩 쌓아 놓고 있으나 아직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해 헬멧 수출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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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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