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소리] 언더그라운드 대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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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축제와 각종 행사가 많았던 지난 상반기 최대 히어로는 누구였을까?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펑크 클럽 드럭의 간판스타 크라잉 넛이 꼽힌다.

이들은 지방 곳곳도 모자라 일본 공연까지 다녀왔다. 어쨌거나 크라잉 넛은 주류 가요판 사람들도 까무러칠 만큼 꽤 많은 돈을 공연 수익으로 벌어 들였다.

크라잉 넛과 더불어 한국 펑크판을 양분한다는 스타 밴드 노 브레인의 정규 데뷔 앨범도 발매와 동시에 대학가의 차트를 장악하며 순식간에 1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음반명인 '조선폭도맹진가' 처럼 열심히 맹진하고 있는 것이다.

힙합계에서는 지난 6월 발매됐던 힙합 그룹들의 옴니버스 음반 '초(超)' 가 발매 첫주 대형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한 주만에 3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지난해 말 발표된 래파홀릭의 음반은 자신이 직접 만든 레이블로 발매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비슷한 유통 경로로 배포된 사이드 비, 절정신운한아 등의 음반도 초판이 모두 매진됐다. 닥터 코어 911과 예레미.롤러코스터의 인기도 급부상중이다.

음반 시장이 불황을 겪으면서 댄스 가수 등은 음반 판매고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지만 골수 지지자를 확보한 이들은 꾸준히 자신들의 개성을 살렸기 때문에 오히려 빛을 발하게 됐다.

일본의 상황도 비슷하다. 펑크 밴드 하이 스탠더드가 지난해 발표한 3집 앨범은 7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고, 지난 2월 스네일 램프라는 스카 코어 밴드의 음반은 인디 레이블 발매로는 유례없이 앨범 차트 1위에 오른바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언더라해도 궁극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히트의 기미가 보일 때 밀어부칠 수 있는 기획력과 자본력이 필요하다.

대부분 성공을 거뒀다는 언더 성향의 음반들이 발매 초기에 화제를 모으다가도 쉽게 불씨가 꺼져 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미국에서 90년대 초반의 얼터너티브, 중반의 네오 펑크, 후반의 힙합 등이 언더그라운드 음악에서 주류로 급부상하여 시대를 풍미하는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과정에는 주변에서 쏟아부었던 직.간접적인 지지가 크게 한몫 했다.

최근 소위 말하는 닷컴 회사들이 음반 업계에 뛰어들며 '음지에서 음악하는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 올리는 작업을 하겠다' 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실패와 성공이 교차하는 긴 시간을 투자의 마음을 놓지 않고 지켜 볼 것인가?

비주류와 주류는 그야말로 글자 하나 차이다. 그 둘을 가르는 담은 의외로 낮을 수도 있고 꽤 오랜 참을성을 요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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