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K중 3년인 李모(15)군은 3년전부터 전과목 과외를 받고 있지만 성적은 하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지능지수(IQ)가 또래 평균보다 높은 李군은 교우관계도 원만하고 무단결석도 없는 등 공부만 빼곤 전혀 문제가 없다.
이 때문에 李군의 부모는 "천성적으로 공부를 싫어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 이라고 속단해 왔다.하지만 전문가의 진단 결과 李군은 책을 읽을 줄은 알지만 의미 파악이 안돼 말로 설명해 줘야 이해할 수 있는 전형적인 '학습 장애아' 로 밝혀졌다.
최근 정상적 지적능력을 가졌지만 정서불안.집중력 결핍 등으로 수리계산.문장 이해 등이 잘 안되는 학습장애 학생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이들은 학습량이 늘어나는 고학년이 될수록 수리.탐구 등이 한계에 부닥쳐 가정이나 일선 교육현장에선 지능이 떨어지거나 게으른 학생으로 오해받아 교정 시기를 놓치기 일쑤다.
올 상반기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를 찾은 환자 1천6백69명 가운데 12%에 해당하는 2백7명이 학습장애 증상을 보였다.지난해 같은 기간의 1백27명과 비교하면 급격한 증가세다.이 병원은 학습장애아가 늘어나자 지난달 소아정신과 내에 별도의 클리닉을 개설, 운영하고 있다.삼성서울병원에는 올들어 3백49명의 학습장애아가 찾아와 지난해(2백16명)보다 60% 가량 늘었다.
미국에서도 1997년 초.중.고교 전체 학생 가운데 3%에 지나지 않던 학습장애아가 올 들어 7%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대표적인 학습장애 증상은 ▶글을 읽을 때 한 단어에 집착해 문장 전체를 소화하지 못하거나▶고학년임에도 글씨체가 난잡하고▶덧셈.뺄셈 등 연산이 느리고 부정확한 경우 등이다.전문가들은 학습장애의 주범으로 전자오락기.비디오.TV 등 영상물을 지목한다.
서울대병원 학습증진클리닉 전문의 신성웅(申成雄)씨는 "학습장애아들은 대개 저학년 때부터 파괴본능을 자극하는 게임기나 영상물을 자주 접해 감각적인 지능만 발달한 학생들" 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특히 맞벌이 가정의 경우 아이가 영상오락물로 무료함을 해소할 때가 많으므로 각별한 지도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24일 서울대병원을 찾은 李모(12)군의 어머니는 "아이 특성도 모른 채 '공부 안한다' 고 꾸짖곤 했다" 며 "한두 줄 문장밖에 표현하지 못하던 아이가 몇달 동안 학습장애 치료를 받은 뒤 한 장짜리 독후감을 쓸 정도로 나아졌다" 고 전했다.
삼성서울병원 학습장애클리닉 홍성도(洪聖道)과장은 "미국의 경우 초등학교 입학 때 학습장애 여부를 검사하는 등 특별 관리하고 있다" 며 "우리도 교육부.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이 나서 전문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