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제대로 하자] 내과 개원의사의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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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약회사 직원의 촌지 공세나 향응 제공은 관례화한 일이었습니다. 현금이 든 봉투는 물론 수백만원대의 디지털카메라를 받고 처방약을 바꾸는 사례도 있었지요. " (가정의학과 개원의 J씨)

"종합병원에 고용된 의사는 처방의 자유가 거의 없습니다. 대개 병원 고위층이나 과장의 지시에 의해 약값 마진이 높은 특정 복사 약품을 기계적으로 처방해왔을 뿐이지요. ' 오리지널 약을 환자에게 제공하지 못한 점을 자책합니다. 또 경영진 요망에 따라 환자들에게 최대한 입원을 유도했습니다." (K병원 내과 전문의 L씨)

의사들은 의약분업 전 랜딩비와 리베이트비 등 약품을 둘러싼 음성소득이 컸음을 대부분 인정했다.

최근 의약품 실거래가 제도와 의약분업 실시로 약가를 둘러싼 거품이 대부분 소멸된 때문이다.

약 판매 마진의 소멸은 특히 동네의원에 치명타를 가했다. 고가 장비를 동원한 비(非)보험 검사가 어려울 뿐더러 입원실을 갖춘 종합병원과 달리 의약분업에서 예외인 입원환자를 거의 취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을 해도 처방료 인상으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과나 소아과.가정의학과 등 진찰 위주의 진료과목에선 수익이 절반 이상 감소했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내과 개원의 Y씨)

"동네의원이 살 길은 오직 환자를 많이 보는 것뿐입니다. 1주일에 한번 방문이면 충분한 비염환자도 매일 오라고 할 수밖에 없지요. 불필요한 검사인줄 알지만 4만~5만원이라도 벌기 위해 보험이 되지 않는 초음파검사를 하자고 말할 땐 낯뜨겁기 짝이 없습니다." (내과 개원의 K씨)

젊은 의사들은 더욱 열악한 사정을 호소한다.

3년째 S대병원에서 무급 전임의를 하고 있는 K씨는 "매달 교수들의 연구비를 쪼개 받는 50만원이 수입의 전부" 라며 "전문의를 딴 지 3년이 됐는데도 생계를 위해 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자신이 부끄럽다" 고 털어놨다.

K씨는 "그래도 의사들은 잘 산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양심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의사들이 잘 산다는 사실 자체가 비극입니다. 편법 진료가 판을 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라며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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