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고객돈 300억원 유치한 청원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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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대화였습니다. 관심과 대화 말입니다.”

중졸 학력의 은행 청원경찰 출신으로 ‘친절’하나로 거액의 예금을 유치해 화제가 됐던 한원태(50·사진)씨. 그는 “진짜 비결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경험을 『300억의 사나이』(다산북스·김영한 공저)로 엮었다.

“은행 직원들이 마치 뒷짐 진 선비처럼 행동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친절해진 편이죠. 하지만 가식적인 친절과 정말 마음에서 우러난 친절은 고객들이 먼저 알아봅니다.”

책은 한 사람의 작은 변화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마침내는 현실에서 생길 것 같지 않은 기적이 일어나는 한 편의 훈훈한 동화를 연상시킨다.

“처음에는 무섭고 딱딱한 인상 때문에 은행을 찾은 아이들조차 저를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행 모니터 요원의 불시 감사에서 평가가 좋지 않게 나왔습니다. 지점장의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는 마음가짐을 바꿨습니다.”

그는 터지지 않는 말문을 억지로 떼가며 고객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이나 바쁜 직장인의 예금 업무를 대신해주고 동네 무의탁 노인을 찾아 말벗이 돼줬다. 한 번 만난 고객은 이름과 인적 사항을 꼼꼼히 기록하고 은행상품의 종류와 특징을 외워 언제나 바로 답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러기를 수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은행을 찾은 고객들은 하나같이 청원경찰인 그의 책상 앞에 줄을 섰다. 결국 지점 수탁고 500억원 중 300억원이 그가 유치한 돈으로 채워졌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고객들은 집단으로 탄원서를 써 용역직인 그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할 것을 은행에 요구해 관철했다. 주변 은행과 백화점 등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잇따랐고 여기저기서 강연요청이 빗발쳤다. 하지만 남다른 고민도 생겼다.

“다른 직원들의 시기 어린 시선과 따돌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고통 끝에 외부 고객만큼이나 ‘내부 고객’인 동료들에게도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는 일하던 은행이 다른 은행에 합병되자 같은 동네 새마을 금고로 직장을 옮겼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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