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무관심이 통일 앞당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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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모든 매체가 오직 이산가족 상봉으로만 가득 메워졌던 지난 주말 오후 H신문사 기자가 갑자기 전화를 했다.

"젊은이들이 이산가족 상봉에 너무 무관심하고 냉정하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이거 통일에 걸림돌이 되고 동질성 회복에 지장이 되지 않습니까. " 이 갑작스런 질문에 "통일은 어떤 통일이고, 동질성은 어떤 동질성입니까" 라고 되물었다.

기자는 이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어쨌든 요즘 젊은이들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그 원인이 무어라고 보십니까" 라고 다시 물었다.

***상봉 관심없는 신세대

기자의 말대로 요즈음 젊은이들이 잘못된지도 모른다. 다른 신문(중앙일보 8월 19일자) 조사에서도 이산가족 상봉은 의약분업, 서태지 가요계 복귀보다 젊은이들의 관심에선 뒤져 있다.

온 나라가 '통곡의 바다' 에 잠겨 있는데, 유독 미래 통일역군들만이 "사흘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우는 데는 사실 지겨웠다" 고 말한다면 같은 민족끼리 생각도, 아픔도 너무 다르지 않느냐는 의문도 가질만 하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것인가. 인도적으로는 마땅히 젊은이들도 같이 아파하고 같이 울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인도적인 사고와 행동이 통일에 기여하고 동질성 회복에 도움이 되는가. 적어도 우리에게는 이 둘은 별개의 것이 될 수 있고 사실상 별개의 것이 돼 있다.

무엇보다 통일을 원한다면 어떤 통일인가. 남쪽 국민의 절대 다수는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이다. 북쪽 '인민' 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남쪽 '국민' 들에게 자유민주주의는 통일보다 민족보다 더 우위에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하나의 국가' ,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진 '하나의 민족' 은 지금 남쪽 국민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유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이 있는가. 더구나 그 제3의 길에 의한 통일이 있는가. 지금까지 인간은 그 누구도 그러한 길을 찾아낸 적이 없고 그러한 제도를 고안해 낸 일도 없다.

흔히 중국-홍콩을 연상하며 1국가 2체제를 말한다. 현실적으로 중국-홍콩은 1국가 1체제 1특구제(特區制)이지 1국가 2체제는 결코 아니다. 그런 체제란 존재해본 적도 없고 할 수도 없다.

만일 중국-홍콩처럼 한다면 남한이 북한 주도의 1국가 1체제의 1특구 노릇을 할 것인가. 북한이 남한 주도의 1국가 1체제의 1특구 노릇을 할 것인가.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면 어떤 통일이겠는가.

우리에겐 역시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통일밖에 없고, 그 방식 또한 '자유민주주의적'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단 1세대와는 전혀 다른 분단 2세대들의 사고방식에 따라야 한다. 그들의 사고는 이산가족 상봉에서 보여지듯 '무관심' 이 주류다.

전매체가 연일 절규하듯 보도해도 이산가족 상봉에 '소극적.부정적 반응' 을 보인 사람들이 조사대상자의 50%나 되고 그 50% 중 86%가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이다(같은 날 중앙일보). 그들은 분단 1세대처럼 6.25를 실감하지 못하고, 그 엄청난 민족적 비극에도 분노하지 않는다.

그들은 분단에도 점점 '무관심' 해져가고 민족의 아픔에도 '무관심' 해져가고 있다. 그 무관심이란 바로 과거를 망각해간다는 의미다.

***恨이 없어야 왕래도 수월

그 무관심, 그 망각이 계속될 때 드디어 남쪽 사람들은 중국인.일본인이나 다름없이 북쪽 사람들을 외국인처럼 보게 될 것이고, 북쪽 사람들 또한 러시아인.체코인이나 다름없이 외국인 대하듯 남쪽 사람들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남북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만남, 자유로운 내왕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자유로운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고 자유로운 내왕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그 만남, 그 내왕에 가장 큰 장애요소가 '통일하자는 의지' 이며, '민족은 하나라는 의식' 이다. 그 의지, 그 의식이 있는 것만큼 남과 북은 서로 경계해서 만남도 내왕도 차단한다.

자유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은 하나의 국가를 강요하지 않고 하나의 민족을 요구하지 않는다.오직 '만남' 이며 오직 '내왕' 이다. 그 만남, 그 내왕이 자유로울 때 필요한 물자가 필요한 것만큼 자유로이 이동한다.

사람이 자유로이 오가고 물자가 자유로이 이동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부구조의 통일이다. 캐나다.미국처럼 하부구조가 통일되면 그까짓 상부구조(국가)야 둘이면 어떻고 셋이면 어떠랴. 그렇다면 젊은이들의 '무관심' , 그들의 '망각' 이야말로 통일의 지름길이다.

송복 <연세대교수 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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