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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전쟁 기아의 땅에서 10년 무릎 꿇고 찍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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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노해씨가 중동에서 만난 양치기 소년은 적군의 탱크에 돌을 던지는 투사이지만 양이 포탄 소리에 놀랄까 봐 꼭 껴안아주는 평화주의자다. 박노해 작, ‘광야의 아잔 소리’, 2008. [나눔문화 제공]


한국 사진계가 날로 두터워지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와 프로 사진작가 모두가 나름의 전문성을 갖춰가며 다양한 작업을 펼쳐 보인다. 카메라를 든 모든 이들이 오늘의 세계를 기록한다. 자연과 사람을 재발견한다. 우리 시대의 사진은 곧 우리다.

시인이자 평화운동가로 알려진 박노해(53)씨가 처음 여는 사진전 ‘라 광야’(7~28일 서울 충무로 갤러리 M)는 메시지가 강력하다. 1984년 펴낸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이 그러했듯, 그의 사진은 보는 이 가슴에 뜨거운 시대정신을 점화시킨다. 지난 10년 동안 국경 너머 전쟁터와 기아 분쟁현장을 걸어 다니며 한 컷 한 컷 광야의 낙타처럼 무릎 꿇고 찍은 사진 4만여 점 중 고른 37점이 나왔다. 이라크·팔레스타인·레바논·시리아·요르단·터키-쿠르디스탄을 낡은 카메라 한 대 메고 떠돈 그는 “모든 진실은 현장에 있다”며 폭격 지점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 그가 사진기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 동지애다.

“전쟁의 공포에 울부짖는 아이들 곁에 함께라도 있어주는 것, 그것이 전쟁터로 달려 나온 제 마음입니다. 미움 없이 분노하고, 냉소 없이 비판하고, 폭력 없이 투쟁하고 싶습니다.” 박노해씨는 한 번 그의 피사체로 잡힌 사람들은 두 번, 세 번 다시 찾아가 그의 생존과 평화를 확인했다. ‘삶이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그의 물음에 “죽지 않고 사는 거요”라고 답했던 소년의 얼굴을 그는 가슴에 각인했다. ‘우리 살아서 다시 만나기를’ 사진 속 소년과 약속한다. 사진전의 수익금은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한 평화나눔에 쓰인다. 작가와의 대화가 15일과 27일 오후 8시, 17일 오후 3시 전시장에서 열린다. 02-2277-2438(www.ra-wilderness.com).

◆이형록 사진전=31일까지 부산광역시 대창동 갤러리 제비꽃. 올해 93세로 생존 사진작가 중 최고령인 한국 사진계 1세대의 작품 72점. 1930~70년대 우리 삶의 현장을 사실주의 시각에 조형성을 더해 모색한 대표작이 한자리에 모였다. 051-240-1888.

◆주명덕 사진 2-풍경=2월 7일까지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 원로 사진작가 주명덕(70)씨의 작품세계를 3년에 걸쳐 집중조명하고 있는 기획전의 두 번째 순서. 한국과 산과 대지를 40여 년 찾아 다니며 기록한 검정 톤, 일명 ‘주명덕 블랙’의 생명력을 즐길 수 있다. 다시 발견하는 우리 땅의 아름다움이다. 02-720-0667.

◆2009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SIFF)=31일까지 서울 문정동 가든5. 국내외 사진의 흐름을 ‘울트라 센스’ ‘휴먼 스케이프’ 등의 주제를 잡아 선보이는 사진축제로 올해 3회째를 맞았다. 예술감독인 김남진씨가 선택한 올 테마는 ‘크로스’.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가상이 교차하는 사진의 최신 지점을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02-2269-2613.

정재숙 선임기자

● 전문가 한마디

박노해의 사진을 처음 본 순간, ‘빛으로 쓴 시(詩)’라는 말이 떠올랐다. 억압받고 고통 받는 지구마을 민초의 강인한 삶에 바치는 경애의 시, 카메라로 쓴 ‘노동의 새벽’이다. (이기명 사진전 기획자·한국매그넘에이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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