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2004] TV 토론, 역대 대선에 어떤 영향 미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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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역대 미국 대선에서도 후보 TV토론은 당락에 영향을 미친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 대선 사상 처음으로 TV 중계된 1960년 리처드 닉슨과 존 F 케네디 간의 토론이었다. 공화당 후보로 현직 부통령이었던 닉슨은 토론에서 민주당의 케네디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다. 두 후보는 중국 문제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정책이 승부를 결정짓지는 못했다. 케네디는 적당히 그을린 미남형의 외모에다 자신감과 패기를 겸비해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반면 닉슨은 무릎 통증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면이 자주 잡혔다. 당시 라디오를 들은 청취자들은 닉슨이 이긴 것으로 여겼지만 TV 화면을 본 시청자들은 케네디의 매력에 푹 빠져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올 대선에서 민주당 존 케리 후보와 싸우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2000년 TV토론에서 톡톡히 덕을 봤다. 토론의 달인으로 불렸던 민주당 앨 고어 후보는 정책에 대한 이해도나 경험에서 부시를 월등히 앞섰다. 정책 전문가들은 고어의 손을 들어줬지만 선거 결과는 달랐다.

고어는 토론 도중 눈동자를 자주 굴리고 긴 한숨을 내쉬는 등 점잖지 못한 표정을 수차례 보였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비열하고 거만한 사람으로 비춰졌다. "유고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구성돼 있다"는 식의 지나치게 상세한 설명도 고어에게는 마이너스 요인이 됐다. 아는 척 뻐기는 듯한 그의 태도는 고어를 고지식한 공부벌레로 보이게 했다.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을 위험한 보수주의자라고 공격함으로써 레이건의 도전을 물리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레이건은 카터의 지루한 정책 설명에 "또 시작이네요"라는 한마디로 그를 무력화시켰다.

레이건은 1984년에도 재치있고 신념에 찬 말이 똑똑한 정책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당시 레이건은 "73세의 나이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겠느냐"고 문제 삼은 월터 먼데일 후보에게 "나는 내 상대의 젊음과 미숙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생각이 없다"고 반격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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