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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 라이프] 프랑스 식당 '라미띠에' 서승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단 8명.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프랑스 음식점 '라미띠에' 의 주인이자 요리장인 서승호(徐承鎬.33)씨가 평일 하루에 받는 손님 숫자다. 요리사는 徐씨를 포함해 모두 5명. 요리사 1인당 1.6명꼴로 손님을 받는 셈이다.

저녁 손님만 받지만 주말.휴일만큼은 점심도 판다. 테이블이 일찍 비어도 다음 손님을 받지는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불안한 식사' 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집의 특별한 서비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와인과 음식에 대한 徐씨의 자상한 설명이 '프랑스 음식' 앞에서 쭈뼛거리게 되는 초보 손님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음식을 기다리는 일도, 너무 빨리 나온 후식때문에 서둘러 메인 음식을 먹는 일도 없다.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과의 시간을 잘 맞추는 거죠. 요리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사실 강남 신사동 키네마 극장 건너편의 현란한 간판들 속에서 이 집을 찾는 것 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간판도 없다.

전식과 후식을 갖춰 먹을 경우 가격은 6만원 내외로 비싸다. 와인 등을 곁들이면 더 비싸다.그러나 PC통신 유니텔의 '식도락 동호회' 게시판엔 "비싸지만 아깝지 않았다" 는 의견이 많았다.

徐씨가 처음 요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고향 충남 조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요리책에 실린 '수도사 같은' 요리사 사진에 반했다.

가족들이 말렸지만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1993년 경주 호텔학교에 들어갔다. 그것만으론 요리에 대한 궁금증 을 채울 수가 없었다.

프랑스행 비행기를 탔다. 2년동안 외국인을 위한 프랑스 전통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 를 다녔고 식당에서 몸으로 요리를 익혔다.

그 곳에선 그는 요리사 아버지의 잘못을 지적하는 요리사 아들을 보며 '프로' 의 참뜻을 알았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특급호텔 주방에서 일하던 그는 99년 4월 라미띠에를 열었다. 주방과 실내장식은 직접 설계했다.

"호텔 주방에선 창의적인 나만의 요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죠. " 처음 2개월은 손님이 없었지만 이젠 4~5일전 예약은 필수다. 직원들은 낮엔 요리책을 보면서 徐씨로부터 요리 수업도 받는다. 낮시간 라미띠에는 음식점이 아니라 장인들의 공방이다.

'라미띠에' 사람들에게서는 갈수록 규격화.획일화되는 메트로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저항이 느껴진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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