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전남영암 왕인박사 유적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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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에 새겨진 천자문

첫 계단을 밟다 깜짝 놀란다.발 밑에 밟히는 天(하늘 천) 地(땅 지) 玄(검을 현) 黃(누를 황) 네글자. 두번째 계단에 오르자 이번엔 宇(집 우) 宙(집 주) 洪(넓을 홍) 荒(거칠 황) 네글자가 발밑에 펼쳐진다. 이렇게 250여 계단을 오르면 천자문의 마지막 한 구절 焉(어찌 언) 哉(어조사 재) 乎(어조사 호) 也(어조사 야)를 만난다. 부지불식간에 객은 천자문을 한번 읊게 된다.

계단정상 전망대에서 올라 밑을 내려보니 왕인(王仁)박사의 경서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1600여년전 논어 10권,천자문 1권을 품에 넣고 상대포(上臺浦)구를 표표히 떠나던 박사의 모습도 그려진다. 돌계단마다 4자씩 새겨진 천자문은 그가 일본개화를 위한 숭고한 헌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전남 영암에서 다시 서남방향으로 9km를 달리면 일본 아스카(飛鳥)문화의 창시자라 추앙받는 백제 왕인박사 유적지에 다다른다. 사방은 호남 서남권 제일명산 월출산(月出山)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누가봐도 천하길지(吉地)라 할만하다.

박사는 이곳 영암 성기동(聖基洞)에서 탄생하여 학문에 정진 18세에 오경박사(五經博士)가 되었으며 32세이던 서기 405년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태자의 스승과 황실의 고문이 되었다. 또 기술공예를 전수하고 일본문화의 원조격인 아스카문화를 창시한후 평생을 그곳에서 백제의 선진문화전수에 바쳤다.

▶ 왕인박사의 영정을 모신 사당

아스카문화는 야마토정권의 쇼오토쿠 태자가 섭정을 담당했던 시대(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중반) 나라분지(奈良盆地) 남쪽 아스카(飛鳥)지방에서 융성한 일본의 최고 고대문화. 당시 태자는 당과 백제에서 불교등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아스카문화를 융성시켰으며 이는 오늘날 일본문화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로 불교문화 걸작들이 많은데 대표적 건축으로 법륭사와 사천왕사를 비롯하여 광륭사등이 있으며, 특히 법륭사는 금당벽화와 금당 삼존상등 건축 공예 조각등 아스카 문화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왕인박사의 묘지는 일본 오오사카(大阪府) 히라카타(枚方)시에 있으며, 1938년 5월 대판부 사적 제13호로 지정됐다.

전망대를 내려오면 곧바로 박사의 위패와 영정이 봉안된 왕인묘에 들어 향불을 올려도 좋다. 바로옆에 전시관에 발을 들이면 박사의 탄생도와 수학도, 서재로 사용하던 석굴에서 일본에 가지고 갈 논어와 천자문을 손수 집필하는 박사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모두가 기념관이 문을 연 1987년을 전후해 그려진 그림이지만 묘사가 생생해 마치 사진을 보는듯 착각을 일으킨다. 사당을 나와 왼쪽으로 돌랍시면 곧바로 박사의 탄생지를 만난다. 집은 온데간데 없지만 주춧돌 자리는 남아 박사가 어린적 뛰놀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 왕인박사 기념관 내부에 세워진 돌탑

가던길을 재촉해 70여m를 오르면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聖泉) 이 있는데 물맛이 어지간한 약수물 뺨친다. 성천 바로옆에는 박사의 위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유허비(遺墟碑)가 그의 높은 품덕을 세세히 기록했다. 박사의 숨결을 더욱 느끼려면 월출산 중턱으로 올라야 한다. 1km쯤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산 중턱에 박사가 공부했던 학당 문산재(文山齋) 와 양산재(養士齋)를 만나는데 건물의 고풍스러움이 월출산의 풍치와 어울려 한폭의 산수화 그 자체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난 후 그의 고향 후학들이 인재를 길러낸 곳으로 매년 3월3일 왕인박사의 추모제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문산재 뒤편엔 박사가 홀로 학문에 정진했던 석굴(石窟)이 옛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앉으면 잠시나마 박사가 되 볼 수 있다.

다시 산을 내려 성기동 서쪽으로 잠깐 걸음을 옮기면 조그만 돌정고개에 도착한다.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때 동료 문하생들과의 작별을 아쉬워 하면서 정든고향을 뒤돌아 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적지 관리사무소 전선희씨는 "박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일본문화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 때문인지 주말이면 일본인들이 수십명씩 이곳을 찾아와 자국에 선진문화를 전수해준 박사영정에 감사의 향불을 올리고 떠나는데 정작 우리국민들은 왕인박사의 위대한 업적대한 평가가 다소 인색해 보인다"며 아쉬워했다. 지난해 이곳을 찾은 국내외 방문객은 20여만명에 달했다.

입장요금은 어린이는 300원, 청소년과 군인은 500원, 일반인은 800원이다. 30인 이상 단체의 경우 어린이는 200원, 청소년과 군인은 300원, 일반인은 500원이다.개관시간은 하절기는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동절기는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다.

영암=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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