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인 텃밭' 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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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 농민의 개인 경작지인 '텃밭' 이 최근 1천평 규모의 개인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기껏해야 20여평 규모였던 점을 감안하면 50배 이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경남대 북한대학원(서대숙 원장)은 최근 '개인밭 확대' 등을 담은 '조.중 접경지역 현장조사 보고서' 를 내놓았다. 전문가들이 지난 7월 9~16일 중국 옌지(延吉)에서 탈북자들과의 면담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함경도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살던 협동농장 주변 1백리 안팎에서는 나무를 볼 수 없다. 모두 '개인밭(농가에 붙어 있는 텃밭보다 큰 규모의 개간지)' 으로 개간됐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당국은 '개인부업 경리' 란 이름으로 집 근처 20~30평 크기의 텃밭에서 배추.고추 같은 개인경작을 허용했는데 이것이 마을 외곽까지 확대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북한 당국도 개인 밭 경작과 소유, 처분권 등을 묵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탈북자 증언에 따르면 개인밭에 도둑이 들 경우 농민들은 분주소(파출소)에 신고해 해결한다.

개인밭이나 텃밭에서 수확되는 곡물은 자신의 식량으로 쓰거나 농민시장에서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 또 개인밭이나 텃밭에 쓰이는 종자는 협동농장 수확물에서 전용해 쓰고 있다.

엄밀히 얘기하면 이는 국가소유 재산을 '횡령' 하는 행위지만 지방 당국이 이를 묵인하고 있는 것이다.

최완규(崔完圭.경남대 북한대학원)교수는 "북한은 지난 98년 9월 헌법 개정을 통해 부분적으로 개인소유를 허용했다" 며 "이는 개인밭 확대라는 현실을 인정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개인밭이 확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식량난 때문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협동농장원은 5인 가족 기준으로 1년에 ▶벼 6자루▶강냉이 5~6자루▶감자 2자루▶콩 반(半)자루 등을 배급받는다.

무게로 따지면 1천㎏이 넘지만 탈곡하면 7백~8백㎏에 불과하며 한 가구 석달치 식량에 해당되는 양이다.

농민들은 보통 협동농장에서 걸어서 1~2시간 떨어진 산간지역에 1천평 내외의 개인밭을 경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여기서 통상 2백㎏ 정도의 식량이 수확된다는 것이다.

崔교수는 "식량난이 지속되는 한 이같은 '개인밭 확대추세' 는 지속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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