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사태 1990~2000…무엇을 남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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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90년 8월 2일 새벽 이라크군은 전격적으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19번째 주(州)' 로 편입됐다. 국제사회는 이라크의 행동을 좌시하지 않았다.

미군을 주축으로 54만명의 다국적군이 편성됐다. 다국적군은 이듬해 1월 16일 공격을 개시, 3월 3일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

이라크군은 괴멸적 피해를 봤다. 전사 10만명, 부상 30만명, 탈영 15만명, 포로 6만명이 발생했다. 다국적군 피해는 사망 1백48명, 부상 4백58명에 그쳤다.

그로부터 1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걸프전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미군과 영국군은 이라크에 대한 봉쇄작전을 수행 중이다.

이라크 영공(領空) 북위 36도 이북과 북위 33도 이남에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 전투기들이 4일에 1회꼴로 출격해 이라크 영토를 폭격하고 있다.

미군은 걸프지역에 2만4천명이 주둔하고 있으며, 연간 10억달러를 쓰고 있다.

진짜 전쟁은 이라크 국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침공 직후부터 발효된 유엔의 경제제재로 지금까지 이라크 국민 1백만명이 사망했다. 84~89년 1천명당 47명이던 어린이 사망률이 94~99년 1백8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5세 미만 어린이는 56명에서 1백31명으로 뛰었다.

유엔은 96년 5월부터 식량.의약품 구입 등 인도적 목적으로 반년마다 52억달러씩 석유를 수출하도록 허용했으나 이중 30%는 쿠웨이트에 배상금으로, 10%는 유엔 관리비로 들어간다.

이라크 국민은 한달에 10달러로 연명하고 있다.

상수도 공급은 마비됐고, 전력은 하루 여섯 시간밖에 공급되지 않는다. 섭씨 50도까지 올라가는 살인적 더위로 악명 높은 바그다드의 여름은 지옥과 같다. 그러나 당사자인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건재하다.

그동안 미국이 벌여온 후세인 제거 공작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쿠르드족.시아파 회교도 등 반(反)후세인 세력은 경제제재로 크게 위축됐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석유 판매 금액 가운데 상당 부분이 후세인 일당의 주머니 속에 들어갔고, 후세인 개인은 60억달러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파악한다.

후세인은 경제제재를 정치선전에 이용, 국민의 반미감정을 부추김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제재를 해제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경제제재가 후세인 축출엔 아무런 효과도 없이 이라크 국민만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중 프랑스.러시아.중국이 경제제재 해제를 주장하고 있으며, 유엔 회원국들도 해제 의견이 다수다.

미국의 민간단체들도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아랍권은 소수의 친서방 부국(富國)들과 다수의 반(反)서방 빈국(貧國)들로 양분돼 후자에서 후세인 지지 세력이 늘고 있다. 후세인은 이같은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특히 최근 고유가를 틈타 이란.러시아의 협력으로 석유 밀수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추세로 간다면 걸프전 최후의 승자는 후세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수많은 죄없는 인명이 희생되고 천문학적 숫자의 전비(戰費)가 낭비된 걸프전이 과연 무엇을 남겼는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정우량 국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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