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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먹고 사는 작은 세상…싸이월드 1천만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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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자영업을 하는 한모(47)씨는 최근 중학생 딸에게 '도토리' 생일선물을 했다. '이번 생일엔 도토리를 받고 싶다'는 딸의 e-메일을 받고 당황했지만, 도토리가 먹는 게 아니라 젊은층에 인기 있는 '싸이월드 세상'의 화폐라는 아내의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업에 다니는 이진영(28.여)씨가 지난 7월 생일 선물로 받은 것도 대부분 '싸이월드 세상'에서 거래되는 아이템이다. 그는 스킨(미니홈페이지를 꾸미는 아이템)과 '생일 축하해'라는 문구가 담긴 미니홈피 장식용 고리로 자신의 홈피를 단장했다.

이는 싸이월드가 만들어낸 새 풍속도다. 포털 네이트닷컴이 서비스하는 미니홈피(블로그)인 싸이월드가 30일 회원 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전국민의 4분의 1이 싸이월드의 가족인 셈이다. 싸이월드는 중복 가입을 불허한다.

◆ 확산되는 싸이 열풍=2001년 9월 문을 연 싸이월드는 지난해 8월 네이트닷컴을 운영 중인 SK커뮤니케이션즈에 팔리면서 비약적으로 회원 수를 늘렸다. SK가 서버를 증설하고 서비스 메뉴를 개선하자 300만명이던 회원 수는 1년 만에 세배 이상으로 커졌다.

싸이월드 인기 덕에 네이트닷컴은 다음과 네이버를 제치고 최근 페이지뷰 선두를 달리고 있다. 싸이월드는 개당 100원에 파는 도토리로 하루 1억5000만원, 한달 4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싸이질(싸이월드에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것), 싸이홀릭(싸이월드 중독증세를 보이는 사람) 등 인터넷 신조어도 나왔다.

미니홈피란 일반적인 인터넷 창보다 작은 아담한 창 안에 사진첩과 일기 등으로 쉽게 꾸밀 수 있는 개인 홈페이지다. 싸이월드가 처음으로 '1촌 맺기' '사람찾기' 등 지인들과 교류하는 기능을 고안하면서 미니홈피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SK커뮤니케이션즈 이동형 본부장은 "미니홈피는 디지털 카메라나 카메라폰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지면서, 자신만의 사이버 공간으로 등장한 것"이라며 "이는 정(情)을 나누는 한국인의 정서와 맞아떨어졌다"고 싸이월드 돌풍의 배경을 설명했다.

◆ 싸이가 가져온 변화=다른 포털업체들도 잇따라 싸이월드와 비슷한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룹형 커뮤니티인 카페를 고수하던 다음이 최근 플래닛이란 미니홈피 서비스를 내놨다. 프리챌(섬).네이버(블로그).MSN(홈피) 등도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한다.

블로그는 기업들의 유용한 홍보수단도 되고 있다.

삼성케녹스 등 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 홈피를 열어 방문객에게 스킨 등을 나눠주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회사명 혹은 브랜드명으로 개설된 미니홈피는 50여개에 이른다.

정치인들도 미니홈피를 활용한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싸이월드에는 1촌 맺기를 신청한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싸이월드가 몰고온 부작용도 있다. 개인 사생활이 쉽게 노출되고 인터넷 스토킹에 시달리기도 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씨나 노무현 대통령의 며느리 배정민씨의 싸이월드에 미니홈피가 공개되면서 폐쇄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람 찾기'기능을 이용하면 남의 홈피에 몰래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니홈피를 꾸미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사례도 비일비재다. 현대.기아자동차나 KT.KTF 등 일부 기업들은 싸이월드가 근무에 방해가 된다며 싸이월드 봉쇄령을 내렸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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