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 너무 혼란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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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밖으로는 북한을 끌어안아야 하고, 안으로는 야당도 품어안아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있다.

실제로 金대통령은 평양방문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화해협력에 합의했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는 상생의 정치에 뜻을 같이했다.

그 기저엔 서로가 모두 이득을 보는 정치, 이른바 윈 - 윈 정치를 하자는 대승적 정신이 흐르고 있다.

***北 끌어안고 野 내치고

최근 서울에서 벌어진 두 사태는 그런 기조와는 사뭇 대조적이어서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당 정권은 다같이 포용해야 할 대상을 놓고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여권은 북한에 대해선 애정어린 배려를 했고, 야당에 대해선 야멸찬 대결행태를 드러냈다.

여권이 金대통령의 필생의 과업인 대북 햇볕정책을 안정적인 형태로 추진하기 위해서도, 집권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점에 개혁정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도 야당의 협력을 얻는 것은 선결조건이다.

북한에 쪼이는 햇볕을 야당엔들 못 쪼일 이유가 없고, 오히려 야당에 더 강하게 쏟아부어 金대통령의 정책추진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상책이다.

그럼에도 여권은 북한에 대해선 최상급의 대접을 하면서 야당에 대해선 대결지향적이다. 여권은 한술 더 떠 북한과 함께 야당을 '이지메' (집단 따돌림)하는 듯 비치기도 했다.

북한이 李총재를 '놈' 이라는 하대말로 비방했을 때 청와대측이 李총재와 북한을 '양비론' 으로 몰고 갔던 것은 그 전형이라 할 만하다.

정부는 북한에 대해선 장관급회담에 차관급이 수석대표로 나와도 장관급이라고 오히려 변호하고, 심지어 과장이 대표로 나와도 격을 따지지 않았다.

회담 개최 전엔 비료 10만t의 지원을 발표했고, 쌀 15만t의 지원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金대통령은 정상회담기간 인공기를 내건 어느 남쪽 대학생들을 선처해 달라는 金위원장의 요청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그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더구나 북한은 지난 평양 정상회담 및 금강산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비전향 빨치산 및 간첩 출신 인사들의 북한 귀환문제를 너끈히 해결했다. 우리 정부의 이해와 관용, 성실과 신의의 정신이 넘쳐 흐르는 모습이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북한에 억류 중인 국군포로나 납북자문제를 거론이나 제대로 했는지조차 모호하게 처리했고, 한 장관은 국군포로는 없다는 북한측 입장을 확인해주는 투의 답변을 해서 공분을 샀다.

그러니까 한 재외공관측이 30년간의 강제억류 끝에 북한을 천신만고로 탈출해 귀환의 편의를 애절하게 호소한 한 납북어민 가족을 1년여 깔아뭉개면서 "당신 세금이라도 냈느냐" 는 망발로 그 꿈을 무참하게 짓밟으려 했던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자국민' 또는 '우호적 인물군' 에 대해 일관되고도 집요하게 매달리는 데 반해 우리 정부가 너무 수세적이고 자국민보호에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남북이 윈 - 윈 하자는 기조에 충실한 나머지 김대중정부가 북한에 대해선 '져주면서' 상생하는 노선을 취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선의로 해석한다.

반면 여권은 야당엔 윈 - 윈 전략을 팽개치고 '이겨서' 상극하는 노선을 취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헌정사에서 3선개헌의 날치기 이후 명분 없기로는 최악이란 국회법개정안 날치기에서 극명하게 표출됐다.

***현 정권 처사 이해 안돼

지난 7월 15일 국회 본회의가 여야간 입씨름으로 파행된 사태를 보고 개판국회라고 개탄했던 서영훈(徐英勳)대표의 민주당은 그보다 훨씬 더 험하고 추한 모습을 보인 날치기국회를 강행하고도 야당의 사과를 오히려 요구하는 담대함을 보였다. 개판이란 개망나니들이 벌이는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태쯤의 뜻이다.

여권은 개판정치를 남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개판 날치기 행태를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리고 민족사의 전환기를 슬기롭게 관리.진전시키려는 金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도 여권은 북한을 품어안는 노력의 반쯤이나마 야당을 포용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현명하다.

여권이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정신을 살리려고 혼신을 다하는 것과는 천양지차로 여야 영수회담의 합의정신을 헌신 팽개치듯 하는 현실이 국민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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