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혼란 틈타 일부 편법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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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의약분업 시행 이틀째인 2일 서울 시내 상당수 병.의원과 약국들이 정부의 의약분업안에 따르지 않고 원내처방.임의조제를 계속해 의약분업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일부 병.의원은 "약국에 가지 않아도 약을 탈 수 있다" 며 공공연히 원내처방을 했고, 적지 않은 약국도 의사의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인 항생제.위장약 등을 버젓이 판매했다.

◇ 동네의원 원내처방 여전〓본지 취재팀이 서울 영등포구 일대 병.의원 10곳을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원외처방전을 발행하고 있는 곳은 절반인 5곳에 불과했다.

정부에서 정한 계도기간이 지난달 말로 끝났음에도 여전히 병원 내 약국에서 약을 지어주거나 환자들의 요구에 따라 원내.외 처방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역 K의원 관계자는 "원장님이 당분간 환자에게 약을 조제해 주라고 지시했다" 고 말했다.

위반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약품 영수증 발행일을 허위로 기재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허리 통증으로 서울 종로구 K정형외과를 찾은 崔모(33)씨는 "병원에서 분업 시행 하루 전인 7월 31일자로 발급된 영수증을 주면서 '이렇게 하면 걸리지 않는다' 며 약을 지어주었다" 고 말했다.

◇ 의사 처방 없이 전문약 판매〓주부 朴모(37.경기도 성남)씨는 1일 동네 약국에서 항생제를 샀다. 항생제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살 수 없다.

편도선이 부어 집 근처 약국을 찾아간 金모(25.여.서울 서초구 방배동)씨도 "약사에게 '병원까지 가기 귀찮으니 그냥 마이신을 살 수 없겠느냐' 고 하자 '원래 안되는 건데…' 하며 줬다" 고 전했다.

충남 천안에선 20대 여자가 약국에서 의사의 처방전과 다른 약을 받아 먹고 쇼크를 일으키는 사고가 일어났다.

순천향대 천안병원 신경과 방차옥 의사는 2일 "오후 6시쯤 편두통 환자인 吳모(29.여)씨가 응급실로 실려와 확인해 보니 전날 처방한 편두통 치료제인 '카페르고트' 대신 자궁수축제인 '에르고트' 를 먹은 것으로 밝혀져 응급조치를 취한 뒤 퇴원시켰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약을 투약한 아산시 J약국 A약사는 "순간적으로 혼동을 일으켜 다른 약을 주었다" 고 해명했다. 일부 약국에선 의사들이 해야 할 문진(問診)도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

◇ 정부 방침〓보건복지부 약무식품정책과 안효환(安孝煥)과장은 "전공의 파업.의료계 재폐업 등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불법 행위를 하고 있는 병원.약국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며 "분업 대상 환자에게 약을 지어주는 병원이나 의사의 처방전 없이 조제하는 약국은 영업정지 처분 등으로 엄중히 처벌할 방침" 이라고 밝혔다.

기선민.하재식.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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